[한시비평연구]이덕무의 청비록과 시품- 이덕무 한시평을 연구하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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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시비평연구]이덕무의 청비록과 시품- 이덕무 한시평을 연구하기에 앞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덕무는 『淸脾錄』序文에서 '천지 사이의 맑은 기운/시인들 비장에 스며든다./천 사람 만 사람 속에/한 사람 두 사람이나 아네/이는 당(唐)나라 중 관휴의 시이다. 생각하건대 나는 본디 시를 잘하지 못하면서도 시를 논하기를 좋아하여 한가히 지내는 사이에, 이목(耳目)이 미치는 대로 고금의 시구(詩句)를 손수 기록하여, 변증(辨證) · 소해(疏解) · 품평(品評) · 기사(記事)를 붙였다. 비록 두서가 없이 한만하지만 머리맡에 늘 간직해서, 남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직 내 스스로 즐거워하므로 「淸脾錄」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하여『淸脾錄』을 지은 경위와 저술방법을 말하고 있다. 『淸脾錄』이라는 이름은 관휴의 시에서 淸氣와 人碑 두 글자에서 온 것이다. 이는 천지의 맑은 기운이 시인들의 가슴에 스며, 그 시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덕무는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워하여 기록하였다고 하였으나, 관휴의 시에서 전구와 결구에 시인의 가슴 속에 스며든 맑은 기운을 아는 사람은 천 명 · 만 명 중에 한 두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는 이덕무 스스로가 그 한 두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淸脾錄』을 지은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淸脾錄』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한문비평에 있어서 '詩品'과 '風格'의 용어를 혼용하여 쓰는 경우가 많은데, 두 용어는 같은 의미가 아니므로 구별하여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詩品'은 종영의 『詩品』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후로 중국에서는 작자의 일정한 분류를 통하여 詩品을 체계화시킨 저서들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補閑集』·『精言妙選』·『詩則』등이 대표적인 시품론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서들의 評語 분류를 살펴보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評語가 명확한 개념으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저서들에서 같은 評語를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그 의미와 범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기존의 시화들을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
우리나라의 시화는 고려말기 『破閑集』과 『補閑集』에서 시작하여 조선전기와 조선중기를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조선후기인 18세기의 시화는 전대 시화를 계승하고 극복하는데 새로운 경지를 열어 놓았다. 앞선 시기의 시화가 주관적 심미성 파악에 주를 둔데 비하여 이 시기의 시화는 한층 객관적인 평과 사실을 기술하였다. 특히 북학파 문사의 시화가 새로이 개척한 특성은 분석적 · 고증적 성격이다. 이렇게 고증적 성격이 강한 이유는 이 시기 학계에 크게 성행한 考證學 영향 때문이었지만, 좀 더 큰 이유는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연구하려는 객관적 의식의 소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