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귀족사회모순증거→ 이자겸의 난
↓영향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문벌 강화됨
↓
무신 란
1. 무신정권의 성립
1. 문벌귀족사회의 동요
1) 문벌귀족사회의 모순
: 음서제를 통해 관직을 독점하고 과전, 공음전을 통해 경제적 특권도
누리던 귀족들은 통혼을 통해 배타적 족벌을 형성하고 왕실의 외척이
되기도 했다 → 그런 세력으로 왕권을 위협
2) 대표적 족벌 : 경원 이씨, 안산 김씨, 경주 김씨, 해주 최씨
3) 하층민의 유망 : 토지탈점, 무거운 조세 부담
4) 여진족의 성장과 금의 건국
: 추장 오아속 시대에 여진족의 통합이 활발히 전개 → 고려에 위협을 가함 →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의 축조 발생
아구타 시대 금을 건국(1115년) - 이자겸 시기 금의 사대요구를 받아들임.
2. 이자겸의 난(1126년)
1) 배경 : 왕실과 중복혼을 통해 명문세력이 되고 정권을 장악한 대 문벌귀족은 왕권을 위협하게 이른다.
2) 이자겸의 횡포
① 왕권위협 : 예종,인종과 중복혼을 하고 무인 척준경(이자겸의 사돈)을 부리며 왕위를 노림
② 신진세력과 갈등 : 국왕 측근 세력인 김찬, 안보린등이 이자겸을 공격했으나 실패
3) 난의 실패 : 이자겸과 척준경의 불화로 척준경이 이자겸을 숙청(1127) 척준경은 정지상에게 제거됨
4) 결과 : 왕권약화, 귀족간의 대립(서경파 등장-정지상,묘청)경원이씨 일시적 몰락, 도참설, 서경천도론등장
3.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1135)
1)배경 -이자겸의 난 이후 새로운 지배층을 형성한 김부식 중심의 경주 김씨 문벌 세력도 이자겸의 외교정책을 그 대로 계승. 금에 대한 이 같은 굴욕적인 외교 자세는 조정 대신 사이에도 반발을 일으켜 윤언이(윤관의 아들) 같은 이는 ‘칭제북벌(고려왕을 황제로 부르고, 금을 정벌하자)’을 주장.
지방 출신의 신진 관료들에게 명분을 제공. 정지상, 백수한 등 서경 출신의 신진 관리들은 묘청과 함께 서 경(지금의 평양. 당시의 서울은 개경이었다) 천도를 강력히 주장하며 세력을 규합.
-서경파(정지상, 묘청)와 개경파(김부식)의 대립
-서경파의 주장 : 풍수지리설을 바탕. (표면적) 서경으로 천도하면 국가 중흥 (실질적) 북진정책-금국정벌
-개경파의 주장 : 금정벌 불능-사대, 보수유학
2)경과
: 서경파들은 서경천도를 주장하며 서경에 대화궁을 건설
→그러나 벼락으로 대화궁 소실→표면적 이유 정당성 상실→ 서경천도운동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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