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조약의 형성과 소멸 그리고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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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르샤바 조약의 형성과 소멸 그리고 그 의미
2차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정치, 경제는 상당부분 황폐화되었고, 장기간의 전쟁수행으로 군사력을 소모함에 따라 서유럽의 연합국과 미국의 군사력 또한 상당부분 약화되었다. 때마침 동유럽을 향한 소련의 세력확장이 시도되었고,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공산당의 지지세력이 점차 확장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소련의 세력확장이 서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자 전쟁기간동안 이뤄졌던 협력관계 이면의 이념의 차이로 인한 긴장관계가 표면화됨에 따라 일순간에 두 세력은 대립관계로 변화되었다. 연합국들과 서유럽의 국가들은 유럽을 재건하고 소련의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위해 몇가지 공조, 협력체제를 갖게 된다. 미국은 유럽의 경제적 재건을 위해 대규모 자금지원을 하게 되고, 1948년부터 3년동안 130억 달러라는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수준의 자금을 서유럽에 무상으로 원조하게 된다. 또한 군사적으로 서유럽과 중북부유럽을 중심으로한 5개국이 1948년 브뤼셀 조약을 체결해 군사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 조약은 이후에 점차 규모가 확대되고, 미국의 참여 또한 이뤄지게 되어 1949년 북대서양조약(NATO)를 창설하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서유럽과 미국은 군사적인 협력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에 이르는 포괄적인 범위의 동맹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서유럽의 반공산주의, 반소련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 소련에서도 몇가지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첫번째가 포민포름이다. 1943년 코민테른 해체 이후, 국제적인 기관을 갖고 있지 않던 공산주의 진영은 미국의 마셜플랜의 계획이 세워진 1947년 말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서유럽의 9개국 공산당이 모여 바르샤바에서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한 코민포름이 창설되게 된다. 이 후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형성되어 정치,군사,경제동맹체제를 이루고, 직접적으로 서독이 이에 포함되자 1955년 소련의 흐루시초프는 알바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지도자들과 함께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군사 동맹 기구를 창설하게 되었고, 창설이후 동독이 참여하게 되어 8개국이 군사동맹 체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바르샤바 조약이다.
그림 1 .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중심인 니키타 흐루시 초프 공산당 총서기
이 조약을 계기로 본격적인 냉전체제가 확립되게 되었으며, 자유진영이라 일컫는 서유럽 및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이라 불리우는 동유럽 및 구소련의 세력으로 양분되게 되었다.
그림 2.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포함된 회원국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북대서양 조약기구와는 다르게 소련을 중심으로한 동맹체제를 형성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는 점인데, 실제로 조약의 회원국 내 소련군의 영토주둔권을 인정함에 따라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세력이 더욱더 확장되게 된다. 이렇게 자국외 영토에 주둔하는 소련군은 1980년대 470만명에 육박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이 이 조약을 체결하게 된 주 목적은 자유진영의 기습적인 공격을 막는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군사적인 조치는 동맹국 내에 존재하는 대공망의 보완정도에 그치게 된다. 따라서 조약의 주된 목적은 기습공격을 막기위한 일종의 외교적인 위협과 안정보장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60년대 소련과 미국의 군비 경쟁으로 인해 장거리 미사일, 핵전력이 점차 확장됨에 따라 핵전력을 중심으로한 동맹군 체제를 확고히 다져가게 되고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이 표면적인 긴장은 60년대 초반의 동맹체제를 견고하게 유지시켜주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냉전체제 하에서도 부분적인 대립의 완화가 일어남에 따라 회원국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게 되고, 가맹국의 자주권 보장등이 주요 화두로 일어나게 됨에 따라 기구내에서도 마찰이 생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1968년 알바니아가 조약을 탈퇴하게 된다. 이후 70년대에 이르러 소련과 중공과의 갈등으로 인한 공산주의 진영내 소련의 세력약화와 더불어 닉슨의 중공방문으로 인한 데탕트시대 도래, 베트남 전쟁 등의 복잡한 국제 정세는 조약 내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자유주의 진영과의 관계 개선과 군축, 유럽회의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미국과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하며, 흑해에서의 대규모 군사훈련등은 비난을 사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80년대 이르러 소련의 경제가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고, 이로 인한 군비경쟁에서도 점차 뒤쳐지게 되면서 기구의 중심인 소련이 휘청거리게 된다. 1985년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가맹국들은 조약의 유효기간을 20년 연장하지만 이러한 조약의 연장은 곧 무의미해지게 된다. 혼란스러운 소련의 분위기 속에서 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소련은 대변혁을 겪게 되고, 이와 함께 80말 냉전체제는 급속하게 무너지게 되는데, 동유럽 국가들의 탈공산화, 민주화는 또한 점차 공산주의를 필두로 한 기구체제를 약화시키게 되었고, 독일의 통일로 인한 동독의 탈퇴와 소련연방의 해체는 결국 바르샤바 조약의 해체를 불러오게 되었다. 1991년 4월 조약기구는 해체되었으며, 그 해 7월 프라하에서 공식적으로 해체가 선언되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해체 이후 동유럽과 구소련은 대변혁을 맞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한 이후 러시아공화국의 출범과 위성국가들의 공화국 출범은 중앙아시아에서 새로운 역학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동유럽 국가들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토에 가입하게 된다. 이후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가들도 나토에 가입하게 된다. 이렇게 바르샤바 조약의 종결은 곧 냉전 체제의 종결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는 동유럽과 소련에 큰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도 경제체제가 붕괴된 상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함에 따라 동유럽과 러시아 및 과거의 위성국가들은 경제재건에 힘써야 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부추기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게도 군수산업의 성장동력인 냉전체제가 종식되었다는 점에서 이 후 미국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국가간 역학관계의 큰 축인 냉전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이념의 대립은 무너지게 되었고, 이후의 국제질서는 민족과 종교중심의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유형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역학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바르샤바조약기구는 20세기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기구로써 냉전체제의 큰 틀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그림 3.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당신을 원한다!
바르샤바 조약에 대한 포스터.(모병포스터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