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드러내는 생명의 이미지
그림 .「의지」, 김선구
지금껏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봐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김선구의 청동소조인「의지」를 꼽는다. 자못 비장한 모습으로 삼척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던 모습은 어린 내게 꽤나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여기서 생명의 이미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루려고 하는 작품이 바로 이「의지」이다. 어렸을 때는 단순히 그 ‘멋진 모습’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때 내가 이 작품에 감명을 받은 것이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의 이미지와 이를 전달하려는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절망, 슬픔, 고통, 죽음과 같은 어두운 면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삶과 생명의 의미를 성찰하려고 노력한데 비해 조각가 김선구는 비교적 밝고 희망적인 생각을 그의 작품에 담아왔다. 힘차게 달리는 말과 기수를 표현한「질주」,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개척자」,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람을 표현한「날개」등이 이런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하지만 생명의 이미지를 이런 잘 알려진 작품들이 아니라「의지」라는 인지도 낮은 작품에서 찾게 된 것은 그 작품이 내재된 생명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한 작품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명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 뿐 생명의 진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의지」는 그림 1에서 보이듯이 줄을 잡은 채 버티고 있는 사람을 표현한 작품이다. 땅과 사람을 잇는 단 하나의 줄은 곧 끊어질 것만 같이 위태롭고 이미 몸은 뒤로 많이 기울어 있다. 얼핏 보면 이 작품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을 표현함으로써 힘들고 위태로운 작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이 드러내는 생명의 이미지가 절망과 두려움에서 오는 인간의 본질을 표현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보거나 막바지에 이른 생명이 발하는 최후의 빛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사람의 절망을 표현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단 하나의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의 꿋꿋함을 보여준다. 작품의 인물이 나약하고 비실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힘찬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지 없이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은 보통 몸을 뻣뻣하게 한 채 줄에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지만 작품의 인물은 힘껏 몸을 비틀며 넘어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인물의 모습이 아주 능동적이기 때문에 줄을 잡고 버티려는 것이 아니라 흡사 검을 꽂아 넣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의지」라는 작품명이 일종의 중의적인 표현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줄에 ‘의지(依支)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의미와 위태로운 상황에서 절대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의 결연한 ‘의지(意志)’라는 의미를 모두 함의하고 있는 셈이다.
「의지」가 김선구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 생명의 이미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생명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생명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생명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으로부터 올까”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덧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꽃처럼 생명의 유한성이 생명의 가치를 부각시킨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창조되었기에 생명이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하지만 이 질문을 나에게 묻는다면 ‘의지’가 생명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니시오 이신(西尾維新)은 그의 저서인『니세모노가타리』에서 진짜, 그리고 진짜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가짜가 있다면 그 중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가짜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진짜는 그 자체로 진짜이지만 가짜는 진짜가 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짜가 진짜보다 진짜라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생명의 가치를 지니기는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 수업에서 보아왔던 인간의 감정과 본질을 이야기한 많은 작품들로부터 근본적인 생명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고통과 두려움, 슬픔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그려냈고 불끈하는 움직임, 샘솟는 기쁨을 통해 살아있음을 드러냈다. 이런 것들은 그저 살아있기만 한다면 자연스레 경험하는 것들이다. 고통, 슬픔, 절망, 기쁨, 즐거움 등의 감각들, 본질들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들을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명에 생명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리고 생명을 더욱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명이 생명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 즉 살아가려는 의지이다. 이런 의지가 있다면 생물학적으로 생명이 없다고 판단되는 존재일지라도 생명성을 가질 수 있으며 반대로 그런 의지가 없으면 생명으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헤밍웨이(E. Hemingway)의『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의지」의 인물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그는 84일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는 일종의 패배자이고 생명의 입장에 있어서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입장에 서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어부들이 감히 나가지도 못하는 먼 바다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 바다에서 우여곡절 끝에 잡은 거대한 물고기는 결국 상어 떼에게 뜯어 먹혀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노인은 돌아와 그의 집에서 평온히 잠을 잔다. 작중에서 노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치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여진다.『노인과 바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소년 역시 생명이 다한 노인과 가까이 하면 같이 운이 다할 것이라는 이유로 노인을 따라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소년은 노인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 소년은 노인으로부터 강한 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굴하지 않는 이 노인의 모습을 통해 강인한 생명의 몸부림, 살아가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헤밍웨이는 이에 대해 노인의 입을 빌려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라고 말한다. 이처럼 진정한 삶, 생명의 이미지라는 것은 생명이 없어지거나 더 이상 생명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도 그 자리에 남아 “여기에 살아가려는 자가 있었다”라고 증언할 수 있는 의지로부터 기인한다.
이제까지 역설한 것을 정리하자면 생명으로 있으려는 의지는 곧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며 이런 생명의 가치는 생명의 이미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생명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요인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의지만큼 생명에 강한 힘을 부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도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강한 의지가 있으면 그 인생을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보는 것처럼 생명의 의지는 위기, 절망, 죽음의 이미지일지라도 그것에서 생명성을 찾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일종의 표지이며 근원이다. 이런 점에서「의지」는 생명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생명 이미지를 드러내는 원인 그 자체를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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