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내의 무슬림 이민자들과의 마찰 및 프랑스 사회의 반이슬람 정서 1989년 히잡사건 과 `2005년 프랑스 소요사태` 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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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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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89년 히잡사건 과 2005년 프랑스 소요사태 와 관련하여)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프랑스 내 무슬림 이민자들의 유입 경로 및 현 실태
2. 무슬림 이민자들과의 마찰 및 반이슬람 정서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
(1) 인종주의적 또는 제노포비아적 분석
(2) 사회경제적 분석
(3) 종교문화적 분석
(4) 프랑스 공화주의적 분석
3. 1989년 ‘히잡 사건’
(1) 사건 개요
(2) 종교계의 반응
(3) 정치권의 대응
(4) 정교분리문제위원회의 설치와 사건의 해결
(5) 히잡 사건을 통해 바라본 프랑스의 이민자 통합정책
4. 2005년 ‘프랑스 소요사태’
(1) 사건개요
(2) 소요사태의 심화 요인
(3) 이민자들의 반응
(4) 프랑스 소요사태에 대한 평가
(5) 소요사태 이후 대책
5. 프랑스 외 타 유럽국가(영국, 독일)에서의 무슬림 이민자
(1) 영국의 경우
(2) 독일의 경우
Ⅲ. 결론
Ⅰ. 서론
우리는 ‘프랑스’ 라는 나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프랑스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패션과 문화의 도시 파리와 에펠탑, 지금은 약간 쇠퇴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라는 가사의 노래로서 친숙한 샹젤리제 거리, 나폴레옹이 세워놓은 개선문, 세계적인 걸작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그 외에도 수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는 루브르 박물관, 홍세화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기사’ 에서 나온 ‘똘레랑스’, 자유·평등·박애라는 현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웠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독일 나치에게 점령된 프랑스 하에서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레지스탕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투르 드 프랑스’,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며 세계적 강호로 군림하고 있는 ‘레블뢰 군단’, 전세계 여성들이 소유의 욕망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 이 적지 않은 이미지의 단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하나 같이 밝고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프랑스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게 하는 성격의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널리 알려진 밝은 부분 뒤에 숨겨진 우리가 알지 못했던 프랑스의 어두운 그림자는 없는 것일까? 우선 한 영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상은 2005년에 있었던 프랑스 이민자 소요사태와 관련된 뉴스 중 일부이다. 근래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들과 무슬림 이민자들간의 마찰이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프랑스인들의 반이슬람 정서가 고조되어 일부에서는 이슬람혐오주의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프랑스를 이야기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에 대해 알고 있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발표를 통해 ‘성스럽기만 한’ 프랑스의 이미지와는 다른 ‘또 다른’ 프랑스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한 쪽으로 치우친 일반적인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은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히잡 사건’, ‘소요 사태’ 와 같은 사건과 함께 프랑스 사회와 무슬림 이민자들과의 마찰의 원인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서 단순히 동경의 대상이 아닌 한 국가로서의 프랑스를 이해해보자.
Ⅱ. 본론
1. 프랑스 내 무슬림 이민자들의 유입 경로 및 현 실태
프랑스는 산업화를 위해 19세기 말부터 주변국들로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 이는 1차 세계대전에서 약 400만의 노동력을 상실한 이후 더욱 증가하여 1930년대에 이미 전체 인구의 7%에 이르는 300만 이상의 이민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1973년에 이르는 프랑스 경제의 ‘영광의 30년’ 이라 일컬어지는 호황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또 한번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두 시점의 이민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1930년대의 이주민들까지만 해도 대다수는 폴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폴란드, 스페인 출신의 프랑스와 동일한 유럽계이자 카톨릭 문화권의 이주민으로서, 차별이 완전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프랑스 사회로 동화되어 갔으며 오늘날 더 이상 이민자로 분류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주민들은 마그렙인으로 불리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및 모로코, 튀니지 출신의 이주민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100년 이상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알제리인이었으며, 그들은 유럽계가 아님은 물론,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프랑스로 건너온 이들은 대부분 일시적으로 돈을 벌어 귀국할 사람들이었으나,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알제리 독립전쟁 이후에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고국에서 경제적 생활이 어렵게 된 사람들이 식민지 모국이었던 프랑스로 완전한 이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프랑스 경제는 활황이어서 이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지만 전쟁 중에 생겨난 상호간의 증오심으로 인해 프랑스는 알제리인의 이주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알제리인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대안으로 택한 것이 오랫동안 프랑스의 보호령이었던 모로코와 튀니지인들이었다. 그러던 중, 1973~1974년과 1978~1980년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프랑스 경제 역시 위기를 맞게 되자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노동 이민 중단 조치를 취하였으나 프랑스에 먼저 와있던 마그렙 이주민들이 가족들을 초청하여 프랑스에 정착함으로서 마그렙 이주민들은 계속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 그 정확한 숫자는 프랑스에서는 1872년 인구조사 때부터 특정인이 어느 종교를 믿는지 조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 일부 학자들은 500~600만명 정도일 것이라고 하고 일부 극우세력에서는 800만명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국립통계청의 자료를 분석한 인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370만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인구의 6.5% 에 해당하며, 프랑스에서 제2의 종교라고 불릴 정도의 세력으로 확장되었다.
2. 무슬림 이민자들과의 마찰 및 반이슬람 정서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강화되고 마찰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그 원인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크게 인종주의적 또는 제노포비아적 분석, 사회경제적 분석, 종교문화적 분석, 공화주의적 분석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