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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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무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I. 무가(巫歌)의 성격
1. 무가의 개념
무가(巫歌)는 사제(司祭) 전문가인 무당이 신을 향한 의식에서 신을 청하고 모셔서 인간의 의사를 전달하는 제의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구비문학으로서 굿의 현장이란 특수공간을 무대로 하며, 노래의 구연과 전승의 주체가 무당이라는 특수 기능인에 한해 불려진다.
2. 무가의 역사
무가의 학술적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무가자료를 본격적으로 채록,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에 들어서였고 그것이 책으로 간행되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와서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격적인 무가자료는 100년도 채 안 된 것들이고 그 전의 무가자료는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그 역사에 자료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무가의 역사적 흐름을 외래종교 유입 이전 시기, 불교 유입기에서 성리학 유입 이전 시기, 성리학 유입기에서 서양종교 유입 이전 시기, 서양종교 유입기 이후의 네 시기로 나눠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무당은 처음에는 정치군장과 제사장을 겸한 최고 권력자로, 국가적 제전에서 신화들을 구연하는 지위를 누렸으나, 제정분리와 함께 제사장의 직책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 권한이 축소되었다. 신라에서는 남해왕 때에 이 제정분리가 이루어졌다. 단군신화,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김수로왕 신화 등이 이 시기의 무속의례와 무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게 하지만, 이것들이 오늘날의 무속의례나 무가와 직접 연결된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불교의 유입과 교세 확장으로 무속의례가 차지하는 비중과 무당의 지위는 한 단계 더 격하된다. 이 시기에 무속은 기층화하면서 불교와의 습합 과정을 밟는다. 국가적 제전으로서의 의미가 퇴색하고 제화초복을 추구하는 개인적 제의 쪽으로 무속이 방향 전환을 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통해서 이 시기의 무속이나 무가는, 전시기보다 오늘날의 무속이나 무가 쪽으로 한 걸음 더 접근하게 된다.
성리학이 유입되고 그것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음으로써 무속은 한층 더 기층화할 수밖에 없었고 무당의 사회적 신분은 더욱 격화되었다. 무당의 신분이 결정적으로 천민으로까지 전락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고려 나 에 전하는 상당수의 노래들은 대체로 이 시기 초기의 무가자료들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매우 단편적인 이들 자료들은 굿거리의 명칭이나 무가의 구체적 사설에서 오늘날과 바로 연결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굿의 형태나 무가의 사설이 확립되어 있었다는 구체적 증거는 18세기 후반의 자료에 와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이옥의 와 , 작자미상의 과 등의 자료들을 통해서 18세기 후반에는 굿거리의 명칭이나 순서, 신의 직능 등이 오늘날과 거의 완전히 일치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 18세기 후반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굿의 형태와 구체적 무가사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유입 후부터 오늘날까지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무속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며, 무가는 이 시기의 집중적인 정리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새로운 창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3. 무(巫)의 유형과 무가의 분류
1) 무(巫) 무 : 무속의례를 집전하는 여자만을 지칭하는 말( 남자 : 격, 박수, 박사, 화랭이, 심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