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이해 임진왜란과 심대 유복립 오윤겸
임진왜란과 심대, 유복립, 오윤겸
-목차-
(1)임진왜란의 전개과정과 의의
(2)심대 장군과 권율장군
(3)의병장 유복립과 김시민 장군
(4)오윤겸 선생과 사명 대사
(5)답사후 느낀점
(1)임진왜란의 의의와 전개과정
일본내의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을 침공하기 위해서 명으로 갈것이니 조선에게 “명에게 가는 길을 비켜 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나 조선에서 이를 거절하자 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명을 친다는 일본의 명목이었으나 임진왜란은 처음부터 계획된 조선침공을 실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준비로 일본내의 전국을 통일하며 익혀온 병법과 무예 등을 정비하였고, 조총 등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최초에 임진왜란은 일본이 20만의 군을 이용하여 부산을 향하여 침공을 해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때가 1952년 4월 14일 이다. 그 후에 왜군은 여러 갈래의 길을 이용하여 조선을 침공해 왔으며 20여일 후인 5월 2일 서울을 함락하였다. 그리고 6월 13일에 평양 또한 함락되면서 왕이 의주로 피난을 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에 이순신장군의 뛰어난 활약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봉기와 재정비한 관군과 명나라 군대의 힘을 빌어서 왜군을 물리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사로 인한 왜군의 퇴각으로 임진왜란이 종전이 되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명 나라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것은 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전쟁으로 인해 조선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중요 문화재 또한 일본으로 약탈당하여 많은 피해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주요 문화재를 생산하던 장인들 또한 일본으로 포로로 납치당하였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많은 발전이었겠지만 조선으로서는 중요 무형문화재의 대가 끊기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명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친명정책을 고수하였고 관우숭배사상 또한 전파되었다.
일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무리하게 일으켜 자국의 경제가 피폐해 졌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조선에서 납치해간 포로들을 이용하여 도자기를 발전시켰으며 조선에서 물려받은 성리학과 유학을 발전 시켜 나갔다.
명 나라는 조선에 무리한 파병으로 인해 국력이 쇄락해 졌으며 자국의 경제 또한 문란하게 되어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명나라의 약세는 여진족 세력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이는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를 가져오게 되었다.
(2)심대 장군과 권율장군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