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의 흐름
초기 기독교,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미술 등 14세기까지 서양화가들은 대부분 예수나 성인의 일생과 같은 기독교적인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종교화를 더욱 성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화가들은 풍부한 색채와 금도금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는데, 오늘날에는 단조롭게 보일지도 모를 이들 그림들이 중세인들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중세 시대는 다른 여러 시대하고는 달리 이질적이고 특색있는 미술을 만들어 전개하였다. 그 특색은 당시의 미술이 모든 의미에 있어 기독교 미술이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세 이후에 있어서도 기독교미술은 풍부한 전개를 다 하고 있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신앙과 교리란 틀 안에 있으면서 신의 지배와 교회의 권위 아래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예술적 개성은 종교적 권위의 규범과 제약 아래서만 성립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중세 예술의 대부분은 ‘무영의 예술가’ 들의 작품이며, 때로는 집단적인 협동 제작이었다. 그들 위에 있는 것은 교회이며 교리이며 또 민중의 신앙이었다. 이와 같은 기독교 미술로서의 조건이 중세미술과 기타의 여러 성격을 대부분 규정짓는 것이었다 해도 무방하다.
이집트 미술이 왕을 위한 미술이었다면 그리스는 인간 개인을 위한 미술, 하지만 중세 미술은 신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이었다.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회화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천년동안 서양 중세 미술을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는 신과 기독교 신앙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회화는 글을 읽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한 시각적 보조물로, 건축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지상에 건설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달해 갔다. 그리고 이런 수단을 표현하는 방법은 시기별로 각각 차이가 있는 양식으로 변화했다.
초기 기독교의 미술은 우상 숭배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양치기나 동물들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교회를 장식한 그림들은 주로 모자이크화로 돌, 유리, 조가비 등 각종 재료의 조그만 조각으로 무늬나 회화를 구성하여 건축물 또는 공예품 표면에 접착제로 붙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방법은 입체감이나 미세한 뉘앙스까지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비잔틴적인 추상 세계를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특히 이 표현 양식은 무엇보다도 색채의 효과가 중시되어 3차원적인 표현에서 입체감이나 원근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 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로마네스크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1200년경 사이에 유럽 전역에 걸쳐 유행한 기독교 미술 양식이며, 12세기 중엽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는 고딕양식의 기독교 미술이 유행했다. 고딕 회화의 대표적인 것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여러 빛깔의 유리 조각이 창문 전체를 종교적 화상으로 메운 아름다움과 그것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의 영롱함으로 성당 안을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채우게 했다.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던 시기로부터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이르기까지 미술양식은 많은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이 모든 미술의 특징은 신 중심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개성이나 인간을 그린 것은 이 시대에 무의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세 말에 이런 양식에 대한 각성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그 후 지오토를 비롯한 화가들이 중세의 평면적인 회화를 현실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표현 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소재나 주제에 대한 관심도 점차 인간적이고 주변 현실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일었다.
로마네스크
로마네스크는 중세 유럽에서 11세기부터 12세기 중엽에 걸쳐 발달한 그리스도교 미술을 말한다. 9세기에 까롤루스대제의 제국이 분열,해체 괴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새로운 왕(王)공(公)제()후(候)가 등장했다. 이들 하부구조는 많은 소영주로 세분되어 까롤루스왕조의 중앙집권적 문화와는 달리 지방 분권적인 문화활동의 태도를 가져왔다. 10세기 중엽부터는 비교적 혼란없이 서부 유럽 일대에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문화활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비교적 좋은 조건이 갖춰진 정치, 경제, 정신의 안정 속에서 로마네스크 예술이 등장했다.
북으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남으로는 지중해 연안까지, 동으로는 폴란드, 헝가리, 발칸반도 북서부에서 서쪽으로는 아일랜드까지 전유럽적 규모를 가진 미술운동이 확산되었다. 프랑스, 영국 등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은 12세기 후반부터 고딕양식으로 바뀌었지만, 독일, 동유럽, 이탈리아, 이베리아반도 등에서는 13세기에 들어서도 역시 로마네스크미술이 존속했다.
이 미술의 현저한 성격 중의 하나는 전시대, 즉 카롤링거 왕조까지의 미술이 궁정 및 그 세력을 배경으로 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했고, 사회의 상류층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에 반해, 깊이 서민 사회에까지 미술이 침투해, 교회만이 아니라 벽지나 농촌의 교회, 수도원까지 창조 활동에 큰 의욕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서민성은 특히 소재면에서 나타난다. 즉 전시대까지 즐겨 이용한 대리석(건축)과 모자이크(벽면장식), 귀금속(십자가,성모자상,제단 등)등의 뛰어난 재료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고, 성당 등의 건축에는 조잡한 석재(석회암, 사암 등)를 이용했다. 그 안벽은 값싼 안료를 이용해서 채색하고 그리스도교의 책형상, 성모자상이나 제단 등을 목조로 하였다. 그리고 성유물숭배에 기초를 둔 성지순례의 유행 (특히 스페인 북서쪽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로마, 이탈리아 남동부의 바리 등)이 기술이나 양식의 전파 교류를 촉진해 통일적인 양식의 보급을 용이하게 했다. 성지 예루살렘의 십자군은 근동방면에까지 유럽의 로마네스크양식을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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