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국민을 속이는 거짓정권 물러가라 6월 민주화 운동
- 6월 민주화 운동 -
목 차
1. 1980년대의 혼란
2. 6월 민주화 운동의 원인
3. 6월 민주화 운동 전개과정
1. 1980년대의 혼란
1980년대 들어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82년에 있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었다. 당시 주범이었던 문부식 씨는 1980년의 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방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986년 건국대학교에서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교 건물 6개동을 점령하여 시위를 일으키니 이 사건이 바로 건대사태 1986년 10월28일부터 4일간 전국 26개 대학생 2,000명이 건국대학교에서 전국반외세, 반독재를 내세우며 농성을 벌이다 1,289명이 구속 송치된 사건
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점에 5월 3일 인천에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시위가 벌어지니 이 사건이 5.3인천사태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 신한민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경인지부 결성대회가 운동권의 격렬한 시위와 이를 막기 위한 공권력 투입으로 대회가 무산된 사건
였으며 이후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전 국민적인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특히 1979년 10월 부마항쟁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
을 경험한바가 있던 부산지역에서는 부산 출신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으로 인하여 더욱더 열을 올려 본격적인 민중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2. 6월 민주화 운동의 원인
5공화국은 중앙정보부 같은 정보통치기관이 판을 치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문을 당하던 시기였다. 이 5공화국의 말기쯤인 1987년 1월 14일에 물고문으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마침 그때는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을 것이냐, 간접선거로 뽑을 것이냐 하는 논의가 뜨겁던 때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큰 파문을 몰고 왔다. 그 파장은 추모대회와 평화대행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라는 범국민적 기구를 탄생시켰다. 순결한 한 대학생을 고문으로 죽여 놓고서도 발뺌을 하는 그 부도덕성이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위기를 느낀 당시 정권은 4월 13일, 대통령 직선을 위해 법을 고치는 문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더욱 큰 분노를 느끼면서 불같이 일어났다. 호헌반대 여론이 각계각층으로 번지면서 교수, 교사, 시민단체, 예술인, 연예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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