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의 생애와 활동
김용호(金容浩)는 1912년 경남마산에서 아버지 김치완과 어머니 박경호의 3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마산상업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의 명치대학 법학과와 신문고등연구과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1973년 고혈압으로 작고하기까지 《향연(饗宴)》(1941)을 비롯한 총 6권의 시집을 남긴 경남 출신의 대표적 시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30년 4월 14일 《동아일보》에 첫 시 을 발표하였으며, 1935년에 와 등의 시를 《신인문학》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접어든다. 1938년에는 실향의 아픔을 담은 장시 을 발표하였다. 김대봉(金大鳳)과 알게 되어 《맥() 1938년 6월 15일 창간되어 1939년 4월에 통권 5호로 종간된 시전문지.
》의 동인이 되면서 그의 시작(詩作) 활동은 더욱 활발해져 1941년에 첫 시집 《향연(饗宴)》을 도쿄에서 간행, 1943년에는 시집 《부동항(不凍港)》이 일제에 압수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광복 후 한때,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한 일도 있었으나 완전히 전향하여 한국자유문학가협회에 가담해 활발한 문단활동을 하면서 서사시를 발표하고,《푸른별》,《날개》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라벌 예술학교 문예 창작과와 수도여자 사범대학 국문과 등의 강사를 거쳐 단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문학 입문》 등 다수의 시문학관련 편저서와 평론들을 통해 후학 양성 및 문학교육에 앞장서 왔다.
1973년 고혈압으로 작고한 후에는 제자들이 1주기를 기려 유시집《혼선(混線)》(1974)을 발간한 바 있으며 1983년에는 그의 6권의 시집 그는 1941년 일본 동경에서 첫 시집 《향연(饗宴)》(흥아사-興亞社)을 낸 이래, 해방 후의 두 번째 시집 《해마다 피는 꽃》(시문학사, 1948), 피난지 부산에서 나온 세 번째 시집 《푸른별》(남광문화사, 1952),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한 제 4시집 《날개》(대문사, 1956), 그리고 마지막 시집 《의상세례(衣裳洗禮)》(일조각, 1962)을 비롯하여 1957년에는 서사시집 《남해찬가(南海讚歌)》(인간사) 등 모두 6권의 시집을 냄.
과 미발표 및 유고시들을 한자리에 모은 《김용호시전집》이 출간되었다. 1975년 6월20일 2주기 기념으로 단국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건립되었으며, 마산의 용마산 산호공원에도 그의 시비가 있는데 여기에는 그의 작품 , 가 새겨져 있다.
김용호는 30여 년의 시작활동을 통해 민족이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해 정직하고 당당한 시적자세를 견지하여온 한국현대시사에서 보기 드문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2. 작품 경향 및 변모과정
김용호의 시세계는 크게 세 단계의 변모과정을 거친다.
초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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