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그가 만복사저포기를 저술한 이유
문학작품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작가의 체험을 반영한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 이상, 작품을 해석하기에 앞서서 작품을 창조해 낸 작가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송창순, 『금오신화의 심층심리연구』,「기순어문학」, 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회, 1991,p179.
시대가 어려우면 도교가 성행한다. 즉, 인간의 욕망이 쌓여 실현되기 어려울 때나, 전쟁 직후에는 도교가 성행할 수밖에 없듯이 자신의 개인적인 심정은 글에 드러나게 된다. 김시습도 역시 자신의 불우했던 삶을 금오신화를 통해 드러내고 있으니,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가의식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에 드러난 도교의식에서 방외인적인 요소를 통해 그가 왜 이러한 글을 썼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주인공을 통해 드러난 김시습의 자화상적인 모습
1.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 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寺)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치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으로 만든 나무 에 은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양생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2. 저의 어버이께서도 여자로서 정절을 지킨 것이 그르지 않았다고 하여, 외진 곳으로 옮겨 초야에 붙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지가 벌써 삼 년이나 되었습 니다.
위의 글1을 통해 의 남자주인공 양생은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으로 혼자 산을 돌아다니며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글2에서는 여자주인공의 처지를 보여준다. 여자 또한 정절을 구실삼아 외진 곳에서 삼년동안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김시습도 두 주인공처럼 재야에 은둔하며 외롭게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양생과 여주인공에 빗대어 나타내었고 작품의 첫머리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김시습은 1435년에 태어나 조선 초기인 15세기를 산 인물이다. 15세기는 유학이라는 이념의 가치 하에서 새로운 사회적 기풍을 형성해 나가는 시대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을 지녔지만 천재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그가 1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8살에는 자신을 맡아 길러주던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살이 되던 해에는 결혼을 했으나 결혼 생활은 지속되지 못했고 과거에서 조차 낙방하였다. 그 후 암울한 환경 속에서 학업을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달은 그는 번거로운 장안을 등지고 삼각산 중흥사로 들어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학문에 뜻을 두고 독서에 열중하다가 단종이 왕위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읽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된다. 김시습이 삭발을 하고 방랑을 하게 된 동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세조의 왕위찬탈로 보인다.
그의 문학은 이렇게 시작된다. 김시습은 이러한 시대조류를 뛰어넘기라도 하듯 일생의 절반 이상을 산사에서 보내며 ‘금오신화’를 창작한다. 조선 중기의 조류에 대해 저항적인 생활이었던 방외의 생활을 하게 되고, 여기서 ‘방외인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설중환, 「금오신화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3.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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