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2. 민예 운동의 형성
3. 비판에서 바라본 야나기
1)오구마의 비판시각
2)일본판 오리엔탈리즘
3)야나기가 바라본 조선의 미
4. 조선의 백색
1)신화속의 白
2)유교시대의 白
1. 들어가는 말
한 시대의 미술작품을 통해서 시대적인 미감이나 미의식을 추출해 내는 것은 당위성을 갖고 있는 일로 오히려 문헌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고대 문헌에 표출된 미학적 자료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 그것을 그 시대의 미학사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문헌자료라는 것이 항상 판단성의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는 없다. 왜냐하면 그 시대별 문헌의 서술자들이 서로의 지배적 위치에 의해 조금씩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하고, 편한 입장의 것들을 다시금 문서로서 남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겨진 예술품들은 그 시대를 그대로 품고 있어 좀 더 확실한 시대의 미의식을 포함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대적 미의식을 추출한다는 미학적 견지에서는 더욱 미술작품 자체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문헌의 내용과 시대적 가치관, 이 양자 간의 폭을 인정하고 좁혀 들어갈 때 비로소 미적 가치로서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먼저 우리의 미를 이야기할 때 쓰이는 무의미함의 기교, 질박단순의 미학, 비애의 미가 왜 나왔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민족의 근원을 살펴보지 않고 그 당시의 상황과 결탁하여 바라보는 의식대로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해버린 야나기의 한국에 대한 미학, 그리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용한 근대의 미학자들, 아무런 느낌 없이 받아들이다 화만 내고 지나치는 경우 속에서 무엇이 빠져있는지 근원적 의미에서 살펴본 후 고전 문헌에 의한 한국미학사상의 역사적 전개 중 색채에 관한 문맥을 갖고 조선시대 야나기가 말한 백색과 연관 지어 보고자 합니다.
또한 들어가기에 앞서 야나기 민예의 어원과 특성 그리고 비판적인 시각을 먼저 나열하여 본 후 백색의 시원적 의미와 야나기가 어떻게 백자의 백색, 상복의 색 등으로 보고 비애의 미, 감춤의 미를 이야기하였는지를 같이 살펴보고자합니다.
2. 야나기 민예의 어의와 특성
민예라는 용어가 처음에 등장한 것은 1925년 야나기 무네요시, 가와이 간지로, 함다 쇼지 등이 일본 각 지방의 민예품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하는 가운데 코야산을 방문하는 차안에서 즉흥적으로 민게이民藝라는 신조어를 생각해 내었다.
근대 초기에는 민예라는 용어 외에 ‘下手まの’나 ‘雜器’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야나기 자신이 생각하는 민예의 아름다움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민중적 공예의 약자인 民藝라는 어휘를 공안해내면서 민예미의 본격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下値의 美」를 발표하였다. 조선미,「유종열의 한국미술관」,『한국현대미술의 흐름』(서울:일지사,1988년),p165
그리고 1926년 4월「일본민예관 설립취의서」를 발표하면서 민예에 자신의 의견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후 야나기는 일본 민예관장을 역임하면서 민예운동의 확산과 함께 민예에 관해 질문해오는 이들을 위해 『民藝의 趣旨』를 저술하고 민예의 어의와 필요성, 목표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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