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

 1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1
 2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2
 3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3
 4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4
 5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5
 6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6
 7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7
 8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8
 9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9
 10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10
 11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11
 12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12
 13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1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교실 내의 미시파시즘적 행위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철학
1. 들어가는 말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메일이 한 통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급우였던 친구가 준 메일이다. 축약하면 너는 장난기가 많아서 진심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라는 그 메일은, 함께 어울려 다니던 6명의 친구가 상호합의하에 보낸 일종의 절교 메일이었다.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주의하겠다는 메일에 돌아온 답이 그게 진심인지 뭔지 어떻게 알아였으니,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이 상당했다. 그 후로 옆을 지나치며 은근슬쩍 심한 말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벼운 괴롭힘을 하다가, 다른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 악화도 없는 것을 보고 2주 후에는 우리가 잘못했어라며 다시 친교를 선언한 그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2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금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어차피 나에 대해 뒷담을 하겠지라거나 나에 대해서는, 이 사람은 관심도 없을 테니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나 하자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 2주간은, 나를 전혀 다른 성격으로 만드는 기간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지옥 같았던 2주보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언저리를 봐와도 그러하거니와, 두 차례 다녀온 실습에서도 그러했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이러한 따돌림, 혹은 괴롭힘과 같은 미시파시즘적 행동의 기저심리와 그에 대한 대안책으로서의 칸트 윤리에 대해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왜 칸트인가? 따돌림이나 괴롭힘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단순 도식화하여 생각하면 폭력의 주체에 대한 동조현상과 그에 대한 다수의 방관이 가해적 요소를 이룬다. 이같은 심리 현상은 개인의 도덕관이 확고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가치추구를 하기 때문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질서나 모범을 우리를 둘러 싼 외부에서 찾고, 이를 몰지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달리 칸트는 개인이 속한 집단의 쾌락적 결과나 나를 보는 외부의 시각이 주가 아닌, 내 자신에 내재된 도덕법칙을 통해 모두의 B가 아닌 나만의 A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율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주창한다. 그는 동시에, 정언명령 중 인간성의 정식을 통하여 동일한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격을 목적으로 대할 것을 요구한다. 이같은 자율적 인간의 면모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음으로 하여 현시대에 범람하고 있는 선동된 사람들과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폭력에 대한 해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이론 개관
가. 칸트
① 단 하나의 도덕 기준 : 선의지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의 제 1절은 선의지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이 세계에서 또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은 오로지 선의지뿐이다.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아카넷, 2005), p. 77.
라는 유명한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칸트의 윤리는 바로 이 선의지라는 절대선의 선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한 것이 오로지 선의지 뿐이라는 명제에서, 선의지는 그것의 결과라거나 어떤 목적에 쓸모 있기에 선한 것도 아니라는 점 또한 도출된다. 요컨대, 선의지는 그 자체로 선하고 가치로운 유일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조건적인 선의 개념을 알 수 있다. 본래적 선이란 오직 그 자체로 선한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것이 무조건적으로 선하다는 말은 그것의 선함을 부정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존재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 이외의 것들, 이를테면 지성과 명예와 같은 것들은 그 의지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손에서는 극도로 악한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선이라 부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