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의 생애
본명은 은태(銀泰), 법명은 일초(一超). 1933년 4월 11일 전북 군산에서 아버지 근식과 어머니 최점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9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1943년 미룡국민학교에 들어가 조기졸업하고 1946년 군산중학교에 수석 입학해 미술과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을 맞아 휴학을 하고 3개월 동안 강제동원되어 비행장 복구작업을 한 뒤 자주 정신착란을 일으켜 가출했다. 그리고 곧 1·4후퇴로 인해 선유도로 피난했다가 다시 군산으로 돌아와 군산북중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그뒤 방황을 거듭하다가 1952년 불가에 들어가 10여 년 동안 수선과 방랑생활을 하다가 1962년 환속했다. 환속 후에도 폭음과 방랑을 계속하다가 제주도에서 도서관을 설치하고 고등공민학교를 여는 등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장,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시 으로 의 추천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한 이래 (1960), (1964), (1967)을 위시하여 많은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1984)을 냈으며, 그간 미국 하버드대학 하버드옌칭 연구교수, 버클리대 객원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회원 한국대표로 활동 중이다.
2. 작품세계의 변모와 특징
1) 초기시
고은의 초기시 경향은 첫시집 《피안감성》(1960) 이래, 《해변의 운문집》(1964),《신, 언어 최후의 마을 처음엔 《제주가집》이였으나 후에 개명함.
》등이 있는데 이때의 고은의 시는 감상적 우울과 허무주의, 죽음과 재생 모티브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허무의 정서에 바탕을 둔 시작행위를 하고 있다. 생애 대한 절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적 자아의 형상에는 삶에 대한 의지나 집착보다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심미적 탐닉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시적 언어 역시 지나치게 탐미적이고 감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정서의 편린을 표출하고 있다. ‘고은의 초기시를 규정하는 이러한 허무주의는 그 속에 강한 ‘에로스적 생명의지’와 ‘자기기해체의 묙구’가 틉입된 것일지라도 50년대라고 하는 역사의 비애와 마주쳐 시인으 자기 존재를 지켜가는 정신적 편향으로서 작용했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고은문학연구의 현황. 한원균(문학평론가). 112p
2) 중기시
1970년대 중반에 발표된 《문의마을에 가서》(1974), 《입산》(1977), 《새벽길》(1978) 등의 작품에서 그의 시 세계는 변모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본인 스스로 ‘전태일 분신사건’에 영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시적 화자는 자기 혐오나 허무감을 벗어나서 역사와 현실 앞에 자기를 똑바로 세우기 시작한다.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민중 중심의 역사관에 바탕을 둔 이러한 자기 인식을 통해 시인은 정의롭지 못한 현재에 대한 격렬한 투쟁의지를 노래한다. 대표작인 에서 잘 나타나듯이 투철한 현실에 바탕을 둔 자기 희생의 비극성과 전투성이 이 기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고은의 이러한 시적 변모는 이전의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삶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생의 무상함에 대한 인식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이때부터 고은 시작의 선종적 지사로서의 지향이 드러난다는 의견도 있는데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고은문학의 도적 변모 양상. 한명환
그리고 고은은 70년대 이후 많은 평론집 산문집에서 환속 이후의 삶의 지향점이 ‘평등주의’에 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3) 후기시
1980년을 경험하고 난 후 돌아온 고은의 시 세계는 다시 한번 변모한다. 시집 《조국의 별》(1948)에서는 가 보여주듯, 과거의 날선 투쟁에 대한 반성적 의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연작시 《만인보》 현재 26권까지 발간되었으며 30권까지 예정 되어 있는데 시인이 북녘으로 갈 때쯤 완성 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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