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발달론] 진정한 의미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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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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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정한 의미의 배려
♧들어가기에 앞서
최근의 배려의 윤리는 정의(justice)의 남성 중심적인 도덕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도덕적인 지향으로 간주되고 있다. 길리간은 콜버그가 제기한 도덕성이 정의를 중심으로 도덕성을 이해하는 남성의 윤리라고 지적하면서, 여성은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즉 배려, 책임, 관계를 중심으로 도덕성을 이해한다고 설명하였다. 또 배려의 윤리를 교육에 적용하고자 했던 나딩스는 학교가 배려를 가르치고 배려를 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배려의 윤리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배려의 윤리를 둘러싸고 제기될 수 있는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깊이 있게 재고해봄으로서 올바른 배려 교육을 하기위한 배려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배려라는 것은 항상 도덕적인 것인가? 또한 배려는 정서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결여된 것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이번 과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배려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했었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서 결국은 배려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그 의미를 정립해나갈 수 있었다. 배려가 어떤 식으로 이해되는 가에 따라서 배려는 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현재의 도덕교육에 있어서 배려가 가질 수 있는 한계점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려교육을 행하고 있다는 점은 배려하는 이를 희생하도록 야기할 수도 있고, 나아가 비도덕적인 배려교육을 행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배려의 의미가 명확히 이해될 때, 학교교육을 배려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좋은 의도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배려윤리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나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분석해봄으로써 배려의 의미를 정립하고, 배려교육의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Ⅰ. 나의 문제의식과 그와 관련된 이론
♧ 배려는 자기를 희생시켜야만 하는가?
도덕이라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없애는 것인가? 배려하는 자는 배려를 받는 자의 세계 속으로 공감과 같은 감정이입에 의해 들어갈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타인의 필요에 대한 수용성이 도덕적으로 자기 억압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상대방에게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필요, 의견은 없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에 자신의 역할과 입장을 규정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소홀하게 대하게 되고 자신을 없애게 되는 것이다. 마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자녀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갓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에 보살핌의 관계가 상호적으로 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배려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이는 배려하는 자에게 도덕적인 해를 주게 될 것이다.
길리간이 여성의 도덕발달 단계로 제시한 세 가지 관점과 두 개의 과도기에서도 여성의 배려가 단지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제2수준(책임과 자기희생)에서 여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배려와 순응, 자기희생을 혼동하여 오직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선행이라고 여기게 된다. 즉 이 수준에서는 여성 자기 자신은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길리간은 제2수준을 도덕적으로 최상의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수준에서는 여성 자신이 배려의 대상으로부터 제외되어 자아와 타인간의 인간관계의 평형상태가 깨지게 된다는 것이다. 길리간에 의하면 여성은 제2수준을 새롭게 고찰하는 과도기를 거쳐서 제3수준(비폭력적 배려와 책임), 즉 인간관계가 상호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제3수준에서는 여성이 타인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타인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아와 타인이 상호의존적이므로 양자 모두를 배려의 대상으로 포함시키게 된다. 길리간은 자기 자신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이기적인 것으로 보여 질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솔직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필요를 인정하는 것, 자신을 가치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솔직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길리간에게 있어 도덕적인 성장은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즉, 희생과 자기부정, 봉사적 삶에 함몰된 자아가 아니라 반성적 자기 성찰에 기초하여 재구성된 진정한 자기 능력감과 자기 존중감의 자아관에 입각하여 배려와 책임을 새롭게 구성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배려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만 아니라 자신이 타자를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처럼 간주하듯이 자아를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존중하는 것이다. 배려의 관계란 양자의 성장과 발전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어야 하지 어느 한편의 희생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하지 않으면, 타인을 또한 가치있는 존재로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의 지각, 자아 존중이 자기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다. 배려가 그 본래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배려를 단지 자기희생에 근거한 타자에 대한 배려로 간주하기보다 자아 존중에 근거한 상호적인 배려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배려는 자아와 타자 모두를 위한 윤리이다. 배려는 일반적으로 타자의 필요에 응답하고 타자의 복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타자를 위한 윤리로 고려되지만, 타자를 위한 윤리는 자아를 위한 윤리와도 관련된다. 그리하여 나딩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배려는 관계이기 때문에,... 배려하는 자로서 타자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때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려는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타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배려는 자기희생을 근거로 타자를 배려하는 양상을 띠지 말고, 자기 배려와 타자의 배려가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 배려는 이성적인 판단이 결여된 것인가?
배려는 일반적으로 정의적이고 행동적인 측면으로 고려되어왔다. 그래서 배려가 마치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배려에는 인지적 측면은 필요 없는 것일까?
나딩스- 배려와 인지적 측면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