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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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메를로 퐁티 : 지각의 현상학
자기에게 갇혀 있는 성이 없듯이 성의 초월도 없다.
어떤 사람도 완전히 구원되지 않으며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는다.
- 1.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현상학적 세계는 선재하는 존재의 설명이 아니라 존재의 정초이며,
철학은 선재하는 진리의 반영이 아니라 예술처럼 진리의 실현이다.
A. 현상학
현상학, 그것은 본질에 대한 연구이며 모든 문제는 현상학에 따르면, 본질을 규정하는 일에 다름아니다.. 현상학, 그것은 또한 본질을 존재의 자리에 다시 놓아두는 철학이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사실성’에서 출발함으로써만 획득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이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적 태도의 단정들을 미정으로 놓아두는 선험적 철학이기는 하나, 또한 반성 이전에 세계가 언제나 ‘이미 거기에’ 양도할 수 없는 현전으로서 존재함을 밝히고, 세계와의 소박한 접촉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며, 궁극적으로 그 접촉에 철학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철학이다.
B. 실존
나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며 심지어 ‘인간’도 아니거니와 동물학, 사회적 해부학 또는 귀납적 심리학이 자연 또는 역사의 산물에서 인식했던 모든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의식’도 아니다. 나는 절대적 원천이며 나의 실존은 나의 이전의 행적에서, 나의 사회적ㆍ물리적 환경에서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향해 움직이고 그것들을 유지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되찾기로 선택하는 그 전통 또는 나와의 거리가 무너진 그 지평을 나에 대해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C. 세계
세계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석에 앞서 거기에 있다. 그리고 감각들과 대상의 조망적 국면들이 단지 분석의 산물들일 뿐이고 분석 이전에는 현실화되어서는 안 되는 데도, 그 감각들을 연결하고, 그리고 나서 그 국면들을 연결하는 일련의 종합들로부터 세계를 도출하는 것은 작위적이리라.
D. 지각
지각은 세계의 학문이 아니며 행위마저도 아니고 심사숙고 후의 입장에 대한 파악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행위가 떨어져 나오는 기초이며 모든 행위가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내가 구성의 법칙을 내 수중에 넣어 가지고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적 환경이며 나의 모든 사유의 장이고 나의 모든 명시적인 지각의 창이다. 진리는 ‘내적 인간’에 ‘거주’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내적 인간이란 없으며 인간은 세계에 있고 자신을 아는 것은 세계 내에서이다. 내가 상식의 독단론 또는 학문의 독단론에서 출발하는 나 자신에게로 복귀할 때, 나는 내재적 진리의 근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운명지어진 주관을 발견한다.
우리는 진리 안에 있으며 명증은 ‘진리의 체험’이다. 지각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은 지각이 참된 것으로 가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리에의 접근으로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만일 지금 내가 관념론과 함께 그러한 사실의 명증성, 그러한 거역할 수 없는 신념을 절대적 명증성, 말하자면 자기 사유의 절대적 명증성에 정초짓고자 한다면, 나는 세계의 경험에 불충실하게 될 것이며,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추구하는 대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추구하는 셈이 될 것이다. 지각의 명증성은 충전적 사유나 필증적 명증성이 아니다.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그것이다. 나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그 세계와 함께 확실하게 의사 소통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며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세계가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세계가 있다’라는 나의 삶의 항상적인 이러한 명제가 가능한 이유를 도대체 나는 완전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세계의 그 같은 사실성은 세계의 세계성을 형성하는 바로 그것이요, 세계를 세계이도록 하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세계에로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에 선고되어 있고 역사 속에서 이름을 갖지 않는 그 어떤 것도 행할 수 없으며 말할 수 없다.
E. 합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