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효석과 메밀 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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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작가 이효석과 메밀 꽃 필 무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이효석의 생애&변천사
▶생애
1. 자연을 벗 삼아 유년시절을 보냄
2. 외학으로 하숙을 함 _ 이때 지나다녔던 지역이 소설「메밀꽃 필 무렵」에 다수 등장
3. 우수한 성적으로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에 진학
4. 위 학교에서 현민 유진오와의 우정을 맺음
5. 조선총독부의 검열관으로 취직
5. 직장을 그만두고 경성농업학교로 하향하다시피 직장을 옮김
6. 다시 숭실전문학교로 직장을 옮김, 왕성한 작품 활동
7. 1936년 「메밀꽃 필 무렵」발표
8. 1942년 36세의 나이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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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요약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앞으론 경사진 밭이 완만하게 놓여있고 뒤로는 우경산이 자리 잡고 있는 이효석의 생가는 전형적인 산촌의 반가로 효석은 산촌의 자연을 벗 삼아 자랐다.
8세 때 외학을 하게 되어 하숙을 하였는데, 당시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아 효석은 봉평과 평창 사이 100 리를 거의 걸어서 다녔다. 그 길은 즉 봉평장터 거리를 뚫고 시내를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 중 충주집(훗날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점)이란 주점도 지나왔었다.
봉평 시내를 빠져나와서 노루목고개를 넘게 되면 장평의 개울에 이르며 이 개울을 건너서는 장평 삼거리에 닿게 되고 이어서 대화장까지 이어진다. 이 중 노루목고개, 개울 그리고 대화장이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 등장한다.
후에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자연의 숨소리가 싱그러운 것은 이 유년시절에 체험하고 몸에 밴 소질에서 풀어져 나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효석은 외학을 하면서도 우등생으로 평창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현민 유진오를 만나게 된다. 학교에서 효석과 진오는 수재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이때 벌써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맺고 문학 쪽으로 재질을 드러내 효석은 산문을, 진오는 시를 창작하면서 서로 평을 주고받는 수학과정을 거치며 서구문학을 섭렵하기도 하고 자작소품들을 투고하기도 하였다.
30세가 되어 숭실전문학교로 직장을 옮긴 그는 이곳에서 창작, 수필, 서간논평, 번역 등 여러 방면에서 작품을 다루고 작품 게재지 또한 다양하게 취급되었다. 그는 가족과의 시간보다는 자기 시간에 치중하여 작품에 몰두하였다. 이 무렵인 1936년에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이 쓰였고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 무렵에 쓰였다 할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였다.
35세 되던 해에 뇌막염으로 곤욕을 치루는 와중에도 그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러나 1년 후인 36세가 되는 5월에 다시 눕게 되었고 25일 하오에 별세하고 말았다.)
▶생활과 성격
깔끔한 외모와 온화한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