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

 1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1
 2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2
 3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3
 4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4
 5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브라질 지리, 역사, 국민, 경제 문화 조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미사회의 문화와 이해
1. 브라질의 지리와 역사
2. 브라질의 국민과 경제
3. 브라질의 문화
이번 강의는 나에게 색다른 수업 이였다. 교수님께서 아동문학을 하신다고 하셨을 때에 사실 강의내용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 하였다. 또한 발표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수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셔서 발표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때까지는 정말로 이해 할 수 없었다. 교수님이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한국교육은 문자로 된 교육에 익숙해 있어 이미지 교육 및 창의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다른 강의와는 달리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 에세이를 쓰고 다른 학우들과 토론을 하는 시간을 통해 내 생각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듣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 생각보다 더욱더 좋은 의견을 들었을 때에는 “아 그렇구나” 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던 부분들이 수업을 들을때 마다 조금씩 줄어들었다. 벌써 한학기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마지막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이 시간이 오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쓰기를 했던게 까마득했었다. 그래서 강의를 듣고 에세이를 쓰라고 했을때는 막막하기도 했었다. 역시나 처음에는 많이 부족했다. 첫 장부터 글 이어짐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글쓰기가 늘었고 교수님께서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을 때에는 정말 기뻤다.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성인의 입장이 아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니 더욱더 편안하고 쉽게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 인종 차별, 인간과 동물 등등 내가 알고 있던 생각에서 더욱더 폭 넒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마지막 페이퍼를 나의 전공을 살려 브라질에 대해 쓰려 한다.
1. 브라질의 지리와 역사
브라질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로 남미 대륙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칠레와 에콰도르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과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다. 비록 아마존 같이 예전에는 인구 밀도가 희박한 지역들에 급속도로 거주지가 확산되고, 산림을 벌채하거나 자연이 고갈되고는 있지만 국토의 대부분은 아직도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다.
포르투갈 점령 이전의 브라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원주민은 거의 투피과라니 인디언 이었다. 각각 서부와 북서부에 제국을 세웠던 잉카인이나 아스텍인과 달리 이들은 제국을 형성하지 않았으며 곳곳에 흩어져 유목생활을 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해군 사령관이었던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에게 발견되면서 처음으로 유럽인들에게 알려졌다. 1500년 카브랄이 인도로 가는 길에 서쪽으로 항해하여 발견된 이 땅은 처음에는 포르투갈인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그러나 브라질(brasil)이라고 알려진 값진 붉은 염료를 함유한 수종이 발견되는 한편, 해안을 탐사하고 있던 프랑스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적극적으로 식민지화에 나서게 되었다. 브라질이란 국명은 염료를 함유한 나무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식민사업은 1530년 마르팀 아폰수 데 소사의 지휘 아래 처음 시작되었다. 그는 1532년 상비센테를 세웠다. 거주지 기부제가 실시되어 봉건적 특색이 강한 대토지소유를 낳았다. 인디언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후에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인디언을 대신해서 농장노동에 투입되었다. 당시 예수회선교단은 인디언을 교화·교육시키고, 인디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등 적지 않은 자취를 남겼다. 내륙을 향한 팽창은 상파울루 시민인 반데이란테가 노예로 쓸 인디언을 납치하고 금을 비롯한 진귀한 귀금속을 찾아내려고 대규모 탐험대를 조직하여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이루어졌다. 포르투갈 통치에 반항한 봉기는 1789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립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808년 포르투갈 섭정궁(攝政宮) 동 주앙은 나폴레옹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브라질로 피해온 후 혁신적인 개혁들을 단행했다. 그 후 1815년에는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로 이루어진 통일왕국을 새로 설립하면서 수도를 리우 데 자네이루에 두고 브라질을 포르투갈과 동등한 왕국의 범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주앙 6세는 본국에서의 혁명운동 때문에 포르투갈로 귀환해야 했다. 포르투갈 의회는 브라질을 식민지 상태로 되돌리려 했으나 브라질인들이 격노하는 바람에 리우데자네이루에 머물러 있던 섭정 황태자 동 페드루는 1822년 9월 7일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2. 브라질의 국민과 경제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1940∼81년 동안 인구는 3배로 빠르게 증가했지만 평균인구밀도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여러 인종집단이 식민지 초기부터 혼혈을 이루며 살고 있다. 식민지 시기에는 포르투갈인이 인디언이나 농장·광산 노동자로 온 아프리카 흑인들과 혼혈을 이루었다. 순수혈통을 유지하는 인종은 거의 없다. 흑인은 바이아·리우데자네이루·마라냥·미나스제라이스 주 등에 많이 살고 있으며, 최근 이주민들이 많은 남부에는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디언은 아마존 강 유역에서 가장 외지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브라질인 대부분이 인디언 및 아프리카인 유입자들에 의해 약간 변형되고 어휘가 풍부해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며,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인디언 및 아프리카인은 원래 갖고 있던 숭배형식이나 전통신앙을 전혀 버리지 않은 상태이다. 아프리카인의 의식이 융화된 그리스도교 신앙이 종교의 보편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구현황은 급속한 증가율, 두터운 젊은 층, 다양한 혈통, 지리적 이동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출생률은 비교적 높다. 가족계획사업이 발달하여 국민들에게 모자건강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망률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인구의 약 절반이 20세 미만으로 젊은 층이 많다는 사실은 출생률을 높인 직접적인 원인이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심하며 도시인구는 급성장하여 전체 인구의 3/4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