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의 역사] 레포트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 신발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여 이야기 하자.
원시시대의 신발의 형태는 거친 땅의 돌등으로 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뭇잎이나 동물의 가죽으로 발을 감싸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초기 이집트 유물 중에는 샌들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이때의 샌들은 파피루스 잎을 꼬아서 만든 것이었다. 신발의 형태와 장식은 주로 신발을 착용하는 그 지역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였다.
현대에 신는 신발의 형태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의 기원전 4-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많고 나막신의 형태도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현대의 가죽신의 형태를 하고 있다. 각각 나라마다 나막신(싸보, 조첼리, 클롬, 카카보, 쭈빈 등) 종류와 모양이 각각 다르나 진흙길이나 비울 때 신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똑같은 점이다.
그리스 초기의 샌들은 펠트, 가죽, 파피루스로 발바닥을 만들고 가죽 끈으로 묶었으나 후기에는 끈이 달리고 여러 가지 형태로 끈을 엇갈리게 묶어 전통적인 그리스 샌들이 되었으며, 초기의 단순했던 샌들이 복잡하게 된 것이 크레피스로서 발바닥보다 약간 넓은 두꺼운 구두창에다 여러 가닥의 끈을 발등으로 끌어올려 묶어 발과 발 옆을 보호하도록 되어있고, 상류계급은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하거나 금으로 장식하였다. 그리스의 크레피스나 그레피다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같으며 이 시기는 샌들의 황금시대였다.
그리스의 철학자는 장식이 없는 검소한 샌들을 신었으며, 그리스 헬레닉(기원전 510-336)시대 이후부터 신발의 발달을 가져왔고 부자와 귀족층의 사람들은 금으로 장식하였으며 여자는 자수나 보석을 장착한 점차 화려한 샌들을 신었다.
로마의 샌들 중에서 solea는 가장 간단한 것으로 나무나 가죽으로 만든 발바닥을 가는 가죽 끈으로 연결시켜 묶는 형태이다. 크레피다는 solea보다 간단한 형태로 발꿈치와 옆면이 덮이기도 하며 발가락이 노출된 일반 시민들의 샌들로서 그리스와 크레피스와 같았다.
크레피다는 구두창이 두껍고 투박하여 걸을 때 소리가 난다고 하여 명칭이 유래되었다. Bawea는 종려나무 잎으로 싸서 만든 이집트의 샌들과 비슷하여 농민이나 철학자들이 신었으며 그리스와 로마의 창녀들은 샌들바닥에 봇을 박아 "Follow me"라는 뜻으로 못에 의해 파여진 자국을 따라 자신이 창녀임을 알렸으며 또한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이 자신의 신발에 못을 박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중세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어 받아서 근세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된 시기이며 동방의 그리스도교가 중심이 되어 모든 사회, 정치,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게르만 민족이 이동이 시작되어 현대 유럽세계의 주요국의 민족구성이 이 시대에 이루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는 금욕적인 그리스도교 정신을 영혼을 중히 여겨 현세적인 인간의 육체에는 무관하여 옷은 다만 신체를 덮는 역할을 할 따름이었다. 따라서 길고 헐렁한 옷이 발을 가렸으며 중세의 무대가 되는 서유럽의 추운 기후로 슈즈와 부츠가 많이 사용했다.
중세에는 근세와 같은 신발의 형식을 낳기 위한 과도기로 기원 후 1세기 북유럽 민족들이 부드러운 가죽으로 굽이 없는 모카신 형태를 착용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북유럽 민족들은 사라센으로부터 가죽 다루는 기술이나 염색 기술을 배워서 로마시대에 발달되었던 재화기술을 좀 더 향상시켜 부드러운 가죽이나 비단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부츠와 슈즈를 만들었다. 중세는 신발의 기본적인 구성이 완성되어 졌으며 신발에 대한 사회적 인신도 높았던 시대이었다. 11-12세기에는 주로 신발을 구성하는 방법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신발바닥이 종전의 일자 모양에 허리가 생겼으며 바닥과 발등이 분리되어 재단되었는데 이것은 현대 신발의 기초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13세기에는 고딕양식의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문양에 있어서 자연물 그대로의 문양 즉, 식물문양의 아름다움과 기하학적 문양이 섞여 나오는 시기로 해석되며 이는 문양이 신발에 도입되어 초승달, 원, 사각형, 십자형의 모티브를 예리한 도구를 가지고 도려내는 장식 법을 써서 표현하였다. 14세기에는 중세 말 기독교의 숭고한 종교적 이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만연하여 거룩하고 높은 신의 이념을 나타내기 위해 높고 뾰족한 표현양식을 건축물에 사용하는 것이 신이 계시라고 생각하였고 하늘로 좀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의 표현으로 나타나 이것이 신발에도 반영되어 앞부리가 뾰족한 신발이 유행하였다. 15세기 중엽까지 전성을 이루었던 고딕풍의 날카롭고 뾰족한 구두는 1490경에 들어서면서 르네상스풍의 둥그스름한 모양으로 변하게 된다. 이 새로운 형의 구두는 그때까지와 반대로 토가 넓적하게 변하여 오리모양의 진기한 형태가 된다. 16세기 후반부터는 신발의 뒷굽이 높은 것이 나타났고 오늘날과 같은 모양이며, 바로크, 로코코시대에는 앞부리가 넓적한 신발을 애호한 르네상스 시대와는 달리 앞부리가 좁고 작은 형태가 선호되었고 신발의 재료는 주로 가죽, 벨벳, 브로케이드 등이며 버클이나 끈 대신 바로크시대는 나비나 장미모양을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하였다. 17세기 중엽에 옥스퍼드라는 일반 실용화가 유행하였는데 검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반장화 같은 단화로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많이 사용됨으로서 이 명칭이 생기게 된 것이다.
부츠는 15세기와 16세기에는 유행되지 않았다. 부츠는 기후가 나쁠 때 옥외에서 여행 시 착용하였으며 검은색, 갈색 등 어두운 색의 가죽으로 만든 것을 신었으며 1530-1540경 앞부리가 넓은 부츠와 다리부분에 슬래쉬 장신이 있었다. 17세기에는 남자들이 주로 부츠를 신었으며 부츠는 무릎아래 길이나 무릎 위까지 닿는 긴 것이었으며 스페인풍의 짧은바지를 착용 시 부츠의 길이는 무름 위까지 오며 바지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짧은 부츠를 신게 되었다. 부프는 밝은 색 천으로 안을 넣은 것이 있었으며 귀족과 일반인과의 차이는 신발의 굽 높이와 신발의 밑바닥 색으로 구별되었다. 1790년경에 유행된 헤시안부츠는 독일 Hesse의 군인들이 신었던 것으로 딱딱하고 윤이 나고 부츠 앞 목에 태슬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부터 여자들이 승마나 스포츠용으로 부츠를 신었다.
슬리퍼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이집트 신 왕국(기원전 1580-525)의 후반기에 가죽으로 만든 짧은 양발모양의 신발이 생겼는데 주로 평민들 사이에 사용되었고 특히 부인들이 많이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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