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제주 43 사건’의 前史, 그 기록과 사실의 복원 ― 『변방에 우짖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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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주 43 사건’의 前史, 그 기록과 사실의 복원
― 『변방에 우짖는 새』
Ⅰ. 서론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탐라국이 고려에 복속된 이후 유배지와 볼모지로서의 한을 가지고 있다. 섬이라는 한계상황으로 말미암은 탓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뭍으로부터 차별받고 수탈되었기 때문에 황폐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해서 유난히 외부세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혈기가 강하게 나타났다.
제주도에서의 민란은 탐라가 고려의 한 군으로 된 1105년부터 시작되어 구한말 방성칠과 이재수의 난, 일제하의 잠녀 투쟁, 해방 후의 ‘제주 43사건’으로까지 이어진다. 현기영의 소설세계에서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소설들이야말로 작가가 지난 20여 년 동안 가장 치열한 열정을 일관되게 쏟아 부어온 것들이다. 그가 지금까지 낸 세 권의 중단편집에서 표제작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순이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가 모두 이 계열에 드는 작품이라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이 계열이 그의 문학세계에 얼마나 커다란 무게를 지니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기영은 ‘제주 43 사건’ 및 그 후유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왜 이토록 집요하게 매달려오고 있는 것일까.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주 43사건’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라도 알아야 할 것이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 읍내의 31절 시위 군중에게 경찰이 무차별 발포, 14명의 사상자를 낸 1947년 3월1일부터 제주도 경찰국장이 한라산 금족지역을 해제, 전면 개방을 선언한 1954년 9월21일까지 약 7년 7개월 동안 지속된 일련의 사건이다. 이를 ‘제주 43’이라 하는 것은 한 무리의 무장집단이 제주도 내 11개지서와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함으로써 봉기의 횃불을 당긴 사건이 1948년 4월3일에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력을 가지고 군 경에 대항하고자 한 세력은, 초기 군경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주력부대 5백 명 미만, 동조 가담자 1천명 안팎”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소규모 저항 세력의 도전에 대하여 당시 미군정하의 군 경 (1948년 8월15일 이후부터는 대한민국의 군 경)은 잔인한 초토화 작전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민간인 대량학살로 나타났다. 당시 제주도의 전 인구가 30만 정도였는데,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만 이상의 인명이 희생된 것이다. 당시 ‘제주 43’의 희생자 숫자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3만이 넘고 5만이상이였다고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당시의 ‘제주 43’사건은 엄청난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현기영은 그의 소설 「쇠와 살」속에서 다음과 같이 당시의 사건에 대해 절규한다.
아,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전대미문이고 미증유의 대참사이다. 인간이 인간을, 동족이 동족을 그렇게 무참히 파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짐승도 그런 떼죽음은 없다. 가해자들은 ‘사냥’이라고 했다. 그것은 ‘빨갱이 사냥’이라고 했다.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때 죽은 자는 모두 빨갱이다. 빨갱이가 아니면 왜 죽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떼주검을 휘발유 뿌려 불태울 때 그 냄새가 돼지 타는 냄새와 흡사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그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자기가 죽인 것이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새삼 확인했는가. 현기영, 「쇠와 살」, 『마지막 테우리』, 창작과 비평사, 1994,p.143.
현기영이 1941년생이니까 그는 일곱 살에서 열네 살까지에 걸쳐 ‘제주 43’을 겪은 셈이다. 세상에 대해 최초로 인식의 눈을 뜨는 그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시기에 역사적 격변의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유소년 시절의 체험은 훗날 작가가 되었을 때 그의 필생의 문학적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현기영이 ‘제주 43사건’ 및 그 후유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평생을 두고 집요하게 매달려오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 43사건’ 및 그 후유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은 적어도 현기영이 이러한 작업을 시작했던 당시에는 비상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제주43사건’으로 죽은 민간인은 모두 빨갱이일 뿐만 아니라, ‘제주 43사건’의 진실에 접근하여 그것을 파헤치려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빨갱이와 한통속이라고 규정짓는 억지논리가 사태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순이삼촌』이 출간된 지 얼마 후인 1979년 말, 현기영은 민주화 운동 관련으로 잡혀가 고문당하던 후배가 그의 이름을 대는 바람에 역시 연행 당하였는데, 당국자는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순이 삼촌』을 비롯한 일군의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그의 소설들을 발견하고는 “이런 소설을 쓴 자야말로 갈 데 없는 빨갱이가 아닌가”라는 논리를 앞세워 더욱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의 경위는 후에 그가 쓴 소설 『위기의 사내』속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이렇듯 현기영 문학의 정신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제주 43사건’소재 소설들이고, 그의 일관된 천착과 관심이 ‘제주 43사건’이라는 비극의 현장인 ‘제주’라는 최남단의 변방에 있었다는 것은 당연히 작가의 초점을 제주민중의 항쟁의 역사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특히 유신과 80년대 대부분의 군부독재의 폭압적 시기 속에서 여전히 ‘제주 43사건’은 금기의 중심에 놓여 있었고 앞서 이야기 했듯 이미 필화사건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겪었던 작가는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다룰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조건이 구한말 이후의 제주민중의 항쟁사에서 소재를 구한 두 편의 장편소설 『변방의 우짖는 새』와 『바람타는 섬』을 낳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