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산성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
목차
Ⅰ.머리말
Ⅱ.삼년산성의 특징
Ⅲ.삼년산성의 전략적 가치
Ⅳ.백제와 대립속의 삼년산성
Ⅴ.맺음말
Ⅰ. 머리말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으로 외침을 방어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지리적 요충지에 축조하는 시설물이다. 특히 산지지형이 많은 우리나라는 산성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국시대 산성 중 하나가 바로 충청북도 보은에 위치한 신라의 삼년산성이다. 백제 공격의 최전방 기지였던 삼년산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축산성이자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이다.
본고에서는 삼년산성의 구조적, 역사적 특징을 알아보고 더불어 삼년산성이 어떠한 전략적 가치를 지녔기에 신라의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삼년산성의 특징
현재 보은에는 삼년산성을 비롯해 매곡산성 등 18개의 성곽 유적이 남아있는데, 이렇게 많은 성곽이 있다는 것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세력이 교착하는 곳으로서 보은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뜻한다. 그 중에서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에 위치한 삼년산성은 남한지역의 많은 성곽 중에서 유일하게 그 축조연대가 확실히 알려진 고대 성곽이다. 신라 자비마립간(慈悲) 13년(470)에 쌓았으며,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8년(486)에 고쳐 세웠다. 문화재청, 삼년산성,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2350000,33,
삼국시대에는 보은을 삼년군, 삼년산군으로 불렀기 때문에 삼년산성으로 불린듯하나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완공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제3 신라본기 제3 - 자비 마립간/13년.
삼년산성을 완성한 서기470년, 당시 신라가 여러 곳에 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삼년산성에만 이러한 기록을 남긴 것은 삼년산성이 보은의 여러 성곽 유물들 중에서도 남다른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삼년산성은 보은군 오정산의 능선을 따라 문지(門地) 4개소, 옹성(甕城) 중요한 성문 밖이나 안쪽을 둘러막은 시설물로서 적이 직접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설치.
7개소, 우물터 5개소와 교란된 수구지(水口地) 성벽 밑이나 중간부에 개구부를 내어 성내에서 발생한 물이 흐르도록 한 시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