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를 중심으로-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김시습의 생애를 통해 본 유불교적 사상
2. 김시습의 생애를 통해 본 도교적 사상
3. 를 통해 본 도교적 사상
Ⅲ. 결론
Ⅰ. 서론
문학작품은 그 속에 작가의 사상이나 가치관, 정신을 함유한다. 이런 작품 속 정신 및 사상은 그 시대의 특정한 분위기를 반영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작품 속에 용해되어 있는 시대정신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우리에게 한문 소설의 효시(嚆矢), 전기문학의 백미(白眉)라고 지칭되는 를 쓴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승려였고 도교사상에도 일가견을 가진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천재적 재능을 부여받은 자가 흔히 그러하듯 그의 언행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고, 그만큼 다양한 면모를 지녔다. 당시의 체제에 속하기를 거부하면서 현실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현실주의자로서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시습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삼교(유불교)에 모두 능했던 인물이라 종교 사상 면에 있어서도 매우 모호하고 종적을 잡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본 논문에서 를 바탕으로 한 그의 종교 사상을 헤아려 보려 한다. 그 중에서도 도교 사상을 그 중심적 소재로 삼았다. 지금까지의 시습의 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심유적불(心儒跡佛)’ 이자(李)는 서(序)에서 일컫기를, ‘況吾淸寒(황오청한) 行儒而迹佛(행유이적불) 明理而該釋(명리이해석)’ 이라 하였는데 이후 대개가 이 말에서 따랐다.
이란 말로 요약된다. 이 말은 다름 아닌 마음은 유가에 있지만 이 세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몸을 불가에 맡겼다는 뜻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외면당한 유자적(儒者的) 이상을 비록 불가에 몸을 던지고는 있지만 불교를 배척하면서 강력히 실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의 생활 태도나 문학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는 도교사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 없이 도외시되어 왔던 게 지금까지의 시습과 에 관한 연구 내용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가 김시습의 유자적 정신만을 구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문학 정신은 어느 것에 진정한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일까?
본 논문에서는 시습의 생애를 통해 도교 사상을 중심으로 한 삼교 사상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를 통한 그의 도교 사상적 측면 등을 살펴봄으로써 시습의 도교 정신을 새롭게 조명해 보려한다.
Ⅱ. 본론
1. 김시습의 생애를 통해 본 유불교적 사상
김시습의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이다.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드높았던 김시습은 5세때 이미 세종대왕에게 불려가 각별한 총애를 받을 정도였다. 그의 나이 21세, 단종 3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글을 읽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대권을 잡았다는 소문을 듣고 삼일간이나 문을 꼭 닫아 잠그고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대성통곡하였다고 한다. http://www.urinara.com/
그리고는 그가 읽던 책을 모조리 불사르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전국 편력의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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