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론 채만식 생애, 채만식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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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채만식론 채만식 생애, 채만식 주요 작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채만식론
1. 머리말
채만식(백릉 또는 채옹, 1902~1950)은 1924년 단편 가 춘원 이광수에 의해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장하여 타계하기 직전인 1949년에 이르기까지 작품 활동을 지속한 작가로, 동반자 작가, 세태소설가, 풍자소설가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이후부터 활발히 전개되는데, 주로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사회의식과 그 형상화 방법으로 사용된 풍자정신에 대한 평가가 대다수이며, 엽상섭과 더불어
1930년대 소설가를 대표한다.
여기에서도 그의 생애와 주요작품 경향을 살펴보고, 그의 주요 작품에 나타나는 현실인식 및 역사의식과 풍자정신을 통해 그의 문학 전반에 깔려 있는 의식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생애와 주요 작품
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가산으로 부농 소리를 듣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한다. 1920년 그는 집안 어른들의 권고로 향리에서 결혼한다.
그 후 학업을 위해 혼자 상경하여 생활하던 채만식은 1922년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도일, 旱稻田大學에 입학하나 이듬해 관동대진재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한다.
그는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세 길로’가 추천되어 등단하지만, 초기 작품들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 1930년대 초 그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동반자적 입장에서 ‘富村(1932)’ ‘농민의 회계보고(1932)’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레디메이드 인생(1934)’ 등을 발표한다. 이 중에서 1934년에 지어진 ‘레디메이드 인생’은 일제하 인텔리 계층의 생활난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를 단순 세태소설가로서의 면모를 벗어나게 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36년 조선일보를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에 전념하는데, 이후 작품들은 초기의 동반자적 경향에서 벗어나 세태 풍자소설을 쓰게 된다. 1936년에 발표된 ‘明日’ ‘쑥국새(1938)’ ‘순공 있는 일요일(1940)’ ‘사호일단(1941)’ 등의 작품은 서민 생활에 어린 전래의 생활감정을 그린 작품들이다. 그리고 1938년에 발표된 장편 ‘태평천하’ 단편 ‘치숙’, 1939년에 발표된 장편 ‘탁류’ ‘금의 정열’ 등은 식민지 사회의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작품들이다. 그 중 ‘태평천하’와 ‘탁류’는 그의 문학의 사회의식과 풍자적 특성을 포괄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는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1945년 옥구로 낙향하여 해방을 맞은 후, 단편 ‘미스터 방’ ‘처자’ ‘민족의 죄인’ 등을 발표하고, 중편 ‘소년은 자란다’를 완성하나 무리한 집필과 가난으로 지병이 악화되어 1950년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