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Ⅰ. 조지훈의 생애와 문학적 배경
조지훈은 1920년 12월 3일 경북 영양에서 부친 조헌영 조헌영(1901~1988)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한의학자, 정치가, 국회의원
과 모친 유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지훈(芝薰)은 그의 아호이고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재력 있고 학문이 뛰어난 가문으로 어린 시절 영양보통학교를 다니며, 조부 조인석 밑에서 유교의 삼강오륜 정신, 지사적 자태, 전통의식을 배웠다. 조부와 부친의 실천적 가르침 아래 조지훈에게는 일찍이 민족의식이 싹텄고, 이러한 민족의식은 그의 문학 활동의 뿌리가 된다.
조지훈은 8세 때 동요를 짓기 시작했으며, 11세 때 그의 형 조세림 조동진(1917~1937) 경상북도 영양군 출생 현대시인. 호는 세림으로 조헌영의 장남이자 조지훈의 형제
과 함께 ‘소년회’를 조직하고 『꽃탑』이라는 문집도 발간했다. 1936년, 16세 때 조선어학회에 드나들며 보들레르, 와일드,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을 읽었다. 1939년, 조지훈은 정규교육 없이 검정고시를 통해 혜화전문학교에 입학하는데, 그 해 4월 조세림과 함께 『백지』 1939년 7월 창간된 순문예동인지. 시를 위주로 하고 소설과 희곡을 곁들인 동인지로서 같은해 10월 간행된 3호로 종간.
발간에 힘쓰는 동안에 정지용에 의해 「고풍의상」으로 『문장』에 1차 추천을 받고, 다시 12월에 「승무」로 2차 추천을 받으며, 다음해 2월 「봉황수」로 3차 추천을 받는 등 화려하게 문단에 나타난다.
그러나 1941년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문장』이 폐간되자 오대산 월정사 강원의 외전강사로 입산하여 「산」, 「고시」, 「산방」, 「완화삼」, 「낙화」, 「파초우」등의 시를 쓴다. 이후 다시 상경하여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지내다 조선어학회 사건 일제는 1942년 조선어학회를 해체시키기 위해 ‘함흥학생사건’을 조작하여 어학회 회원과 그 사업에 협조한 사람들을 대부분 검거했다. 조지훈은 오대산 월정사의 은둔 생활 중에 사경하여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을 돕던 중 검거사건이 터져 일경에 문초를 받았으나 정식 회원이 아님이 밝혀져 구속당화는 화를 면했다. (조지훈, 「문학론」, 『전집3』, p.204)
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낙향과 상경을 반복하는데 이 때, 박목월과 친분을 쌓기 시작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전국문필가협회, 청년문학가협회,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문학가협회 등에서 요직으로 지내며 혼란기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며,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 문학의 수호 육성에 힘썼다. 뿐만 아니라 시 창작을 계속하여,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 1946 간행.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의 시집으로 박목월편에 15편, 조지훈편에 12편, 박두진 편에 12편으로 모두 39편이 수록되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자연예찬의 서정시가 주를 이룬다.
을 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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