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집현전의 갈등)
< 목 차 >
서론
한글창제를 둘러싼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 사이의 갈등
본론
1. 집현전의 설치와 기능
2. 세종의 한글창제 목적
3. 한글창제를 반대한 집현전 학자들과 그들의 주장
4.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 한글창제
결론
한글창제를 둘러싼 갈등에 대한 나의 견해
서론.
『세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글창제일 것이다. 한글은 우리고유의 문자로 우리민족의 자랑거리다. 지금 이렇게 편리하게 우리말을 글로 적어 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한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 과제의 주제를 한글창제 논란으로 정하게 된 것은 저번 주 강의가 한글창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중 집현전 학자 최만리가 한글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내용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집현전학자들 중 반대하는 이가 있었고, 결국 세종의 의지로 한글을 만든 것이라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다음은 최만리 등이 올린 상소문의 일부이다.
『신 등이 엎디어 보옵건대, 언문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오나, 신 등이 구구한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되는 것이 있사와 감히 간곡한 정성을 펴서 삼가 뒤에 열거하오니 엎디어 성재하시옵기를 바랍니다.』 -세종의 국가경영
이처럼 집현전 학자들은 언문을 제작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글창제에 반대하는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실제로 과제자료를 수집하다가 네이버 지식인에서 실시하는 지식 릴레이를 보게 되었는데, "한글창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답변을 달았는데, 세종이다 세종은 지시만 했을 뿐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 세종과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 등등 의견이 굉장히 분분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세종이 지시만 했든 아니면 함께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지지했고 세종이 혼자 만들었다는 의견은 거의 없었고, 더욱이 세종의 한글창제를 지지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답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한글창제 논란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갖고 세종이 어떠한 이유에서 한글창제를 하게 되었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떠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본론.
1. 집현전의 설치와 기능
세종의 한글창제를 반대했던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다. 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종시대의 집현전이 어떠한 기관이었는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대에 눈여겨 볼 것이 집현전의 확대와 개편이다. 집현전은 세종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세종이 성공한 왕으로 평가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세종 옆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물론 지도자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그를 옆에서 끌어주고 밀어주는 주변 인물들의 영향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세종이 이렇게 좋은 인재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집현전이라는 기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의 집현전은 본래 고려의 제도를 이어 그대로 보존한 것이나 유명무실하였다. 이에 태종은 집현전에 대해 많은 구상을 하였고 자신보다는 세종이 집현전 창립에 적임자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결국 세종시대로 넘어와 집현전이 확대되고 실제 연구기관으로 개편되게 된다. 집현전 건립의 가장 큰 이유는 신진 인사를 양성하고 문풍을 진작하기 위함이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많은 뛰어난 인물들이 제거되었고 어떤 이들은 너무 나이가 들거나 혹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인재가 고갈되었다. 그러나 태조와 태종시절은 인재를 키울만한 안정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인재난은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태종은 외국으로 보낼 외교문서 하나 작성할 인재조차 없다고 한탄한 것으로 보아 훌륭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문풍을 진작하기 위함인 것은 아래의 자료를 보면 짐작 할 수 있다. 다음은 세종 1년 2월 16일에 좌의정 박은이가 올린 계의 내용이다.
『문신을 선발하여 집현전에 모아 문풍을 진작시키소서. 또 문과는 어렵고 무과는 쉬우므로 많은 양반 자제들이 무과에만 몰리니, 지금부터 무과도 사서를 통달한 뒤에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하소서』 -세종대왕과 그의 인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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