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타일
저녁 늦은 시간, 나의 문화 과제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과제를 떠올리며 생각이 잠긴다. 내가 살아오면서 함께한 문화들은 무엇이 있을까. 게임, 음악, 만화책, 영화, 옷 등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솔직히 21년 내 인생을 대표할만한 문화는 없는 것 같다. 엷고 넓은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중 오랜 기간동안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패션일 것이다. 패션이라고 하니 뭔가 문화 같은 느낌이 안 들고 이상하지만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는 이것뿐이다. 물론 내가 옷 입는 데 일가견이 있다거나 모델 같은 체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단지 좋아할 뿐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의 관심은 운동화와 가방이었다. 교복을 입던 시기에 다른 애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부분들 이었다. 그 중에서도 운동화에 대한 나에 관심은 각별했다. 맥스, 포스, 덩크, 우븐 등 그 때 관심을 가졌던 운동화들 이름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학생이라 신발 수집가처럼 여러 신발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에 신던 운동화를 팔고 돈을 더 보태 새로운 운동화를 사는 것에 만족했다.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멀티샵들을 돌아다니며 운동화 구경을 하곤 했다. 주인아저씨와 상담을 하며 나의 다음 목표물을 정했다. 오랜 기간 용돈을 모아 갖고 싶던 신발을 샀을 때의 만족감은 정말 최고다. 이시기에 내 최고의 적은 운동화 신고식 하려고 하는 무리들이다. 한번은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날 쪼잔한 놈으로 보면 곤란하다. 그럴만한 사건이 있었다. 신발매니아 친구들 사이에서의 또 다른 재미는 진품 가품 논쟁이다. 일단 시작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다들 어디서 주어들은 건 많아서 말하는 거 보면 전문가다. 마치 운동화를 주제로 한 토론프로그램을 보는듯하다. 결국엔 결론이 나지 않아 나이키 본사에 메일도 보내봤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시절, 나에겐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학원을 다니면서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는 나에겐 옷 입는 것이 고민이었다. 아무도 내가 옷 입는 것에 신경 안 쓰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날 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압박감... 나를 조여왔다. 이런 현상은 사춘기 시절 나타나는 것인데 나에겐 좀 늦게 찾아온듯하다. 자연히 나의 관심은 운동화에서 옷으로 옮겨갔다. 대학교간 친구들 불러서 동대문도 가보고 여기저기 쇼핑도 많이 다녔다. 이때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또 명품이란 것도 알게 됐다. 명품을 알게 되서 내가 명품만 입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말하자면 내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고 하는 게 좋겠다. 옷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아무리 멋진 옷도 사이즈가 안 맞거나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절대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예쁜 옷이라 충동구매 했다가 낭패본적이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옷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 나한테만 한정 되 있는 감정일지 모르지만 아침에 나에게 잘 어울리고 좋아하는 옷을 입고나오면 왠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자신감도 생기는듯하다. 이렇게 옷에 관심을 쏟다 보니 이제 스스로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느낀다. 요즘 아이들 모두가 그렇듯이 나 역시 남들과 같은 것은 싫다.
나의 이런 운동화와 옷에 대한 관심이 내 인생과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이것들은 단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지금 운동화와 옷에 대한 나에 관심은 전보단 못하지만 여전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남에 시선을 덜 의식한다는 것. 나는 지금 운동화와 옷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남이 만족하는 나보다 내가 만족하는 나를 찾고 싶다.
술, 당구, 영화, 미팅... 하지만 이렇게 대학생이 되기 바로 전까지 내가 향유하는 문화는 거의 두 가지에 불과했다. 공부와 농구가 그것이다. 중학교 이후로 농구를 너무나 사랑해왔고 그것은 나의 심신을 푸는 수단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내력을 이제부터 좀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내가 농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이 다른 친구들이 컴퓨터와 놀 때 내가 농구를 한다면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 이었다. 일단 컴퓨터는 앉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하면 굉장히 오랫동안 하게되지만 농구의 경우 1시간만 죽도록 하면 힘들어서 더 이상 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빼앗기는 시간이 적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키가 좀 작았던 나로서는 키를 키우는 방안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또 기본적으로 체력 단련에도 크게 효과가 있을 것 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공부와 농구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명덕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고등학교 가서도 공부와 농구만 하려고 했으나 일이 좀 꼬이기 시작했다. ‘여자친구’ 라는 제 3요소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3가지를 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결국 2학년이 되면서 하나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공부와 농구로 포인트를 맞췄다. 그러던 중 나는 체육대회에 중국어과 대표선수로 뽑혔고 우리 팀은 우승했다. 슈팅가드였던 내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스탠드에서 터져나오던 친구들의 환호성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렇게 고3이 되었는데 이제는 농구가 내 앞길을 막았다. 당시 갑자기 유행처럼 번지던 ‘힙훕’ 이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서 책을 보다가도 어느새인가 머릿속은 농구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몸이 들썩거렸다.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고 재수를 시작하며 아버지와 큰 다짐을 했다. 내 인생이 걸린 1년 농구를 꾹 참아보겠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오면서 재수학원 친구들이 반 대항전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꾹 참았는데 워낙 학원에 우리학교 출신들이 많았던 탓에 친구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농구를 하게 되었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적당히 자재하면서 해서 이렇게 한양대학교에 오게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정말 농구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이 생각같이 안나올 때, 여자친구로 인해 속상할 때, 친구들과 불화가 생겼을 때 농구는 늘 내곁에 있어 주었다. 농구는 나에게 재수의 시련과 활력의 재생이라는 이중적인 것을 주었지만 앞으로는 나의 역동적인 삶의 윤활류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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