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
차례
1. 들어가며
2. 인물소개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3. 당시 고려 말의 상황
·개혁정치
·신진사대부의 등장
·왜구의 침입
·철령위 문제
4. 조선의 건국과정과 태조 이성계, 그리고 위화도회군
5. 조선의 건국과 그 의의
6. 맺음말
Ⅰ. 들어가며
역사에는 평화롭지만 평범한 시대가 있고, 어렵지만 창조적인 시대가 있다.
한말의 조선처럼 공민왕 대(1352~1374)이후 40여 년 동안 고려는 수차례의 전쟁과 기근, 폭정을 겪었지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창조적인 시대였다. 고려 말의 실천적 지식인들은 국가의 공공성 붕괴, 그리고 불교의 부패와 유학의 현실도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공백 현상을 목격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난을 함께 슬퍼했다. 성리학을 새로운 문명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당대 고려의 정신적 혼란과 정치적 위기를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여, 정신적이고 정치적인 개혁 운동에 헌신했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배우고자 하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건국이 실현된 것이다. 자, 그럼 조선의 건국에 대해 한 걸음 내딛어보자.
Ⅱ. 인물소개
1) 태조 이성계 [太祖 李宬, 1335~1408]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시조로 화령부(和寧府:영흥)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름은 성계(成桂)이다. 또한 자는 중결(仲潔)·군진(君晉)이고, 호는 송헌(松軒)인데 등극 후에 이름을 단(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친다. 이성계는 이자춘(李子春)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최한기(崔閑奇)의 딸이다. 비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 그리고 계비는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며,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자라면서 탁월한 무장으로의 면모를 갖춘다. 그리하여 고려 말에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크게 무찌르는 쾌거를 이룩하며 개혁파 사류와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인물이다. 이성계는 한양천도, 경복궁 건립, 조선경국전 편찬으로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또한 사대교린정책으로 대내적은 물론, 대외적인 실리추구에도 이바지한 인물이다.
2) 정도전 [鄭道傳, 1342∼1398]
정도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가 및 학자이다. 그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며,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다. 충청북도 단양군 삼봉에서 태어난 정도전은 귀족인 아버지와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러한 이유로 어린 시절을 온갖 설움을 겪으며 보냈지만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대학자 이색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학문을 닦으며 정몽주 등 여러 유학자들과 두루 친분을 쌓은 인물이다.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최영 등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정도전은 힘껏 이성계를 뒤에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새 임금으로 내세웠다. 그러다 이방원에 의해 고려 왕조를 지지하는 세력이 모두 제거되자 이성계를 임금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인 조선을 건국하게 만들었다. 조선을 건국하는데 일등 공신이 된 정도전은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겸 의홍삼군부사(義興三軍府事)가 되어 권력을 손에 쥐어 행정, 군사, 외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전반적인 문물제도와 정책의 대부분을 직접 정비해 나간 인물로서, 조선이 갖춰야 할 정부 형태와 조세 제도는 물론 법률 제도의 바탕을 만들었으며,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시켰다. 또한 서울을 조선의 새 수도로 결정한 것은 물론, 서울의 설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묘와 사직, 궁궐의 터 등이 들어설 자리를 정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궁궐 및 각 전각의 이름도 모두 정도전이 손수 지었다. 그 밖에도 종묘의 제례법과 음악도 정도전이 제정한 것이었고, 노비 해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조선의 군사 제도를 만들어내고 직접 군사 훈련을 실시했던 군사 전문가이기도 했다. 이렇듯 정도전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을 해냈던 일등공신이었다.
3) 태종 이방원 [太宗 李芳遠, 136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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