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 김광균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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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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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두(雨杜) 김광균
1. 작가의 생애
김광균은 1914년 1월 19일 경기도 개성에서 웅천 김씨 김창훈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세를 꾀하지 않는 선비의 집안이었지만 아버지가 개성 남대문에서 포목 도매상을 경영하여 어린 시절 넉넉한 가정에서 고생 없이 자랐다. 1920년에 개성시 원정소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년(11세)에 아버지가 중풍으로 돌아가시자 집이 채권자에게 넘어가 셋방을 얻어 모친이 삼포장사를 시작해 근근히 생계를 이었으나 어려운 가계형편에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함북 성진으로 이사한 외갓집에서 얼마간 살았다. 1926년(13세)에 원정소학교를 마치고 개성상업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해에 세 살 위의 누나 숙임(淑任)이 요절하였고, 이를 소재로 한 을 [중외일보]에 발표하였다.(1926. 12) 이후 1927년 11월 시 을 [조선일보]에 발표하였으며, 1929년 10월 시 , , , 등을 [동아일보]에 발표하였다. 1930년 시 , 등을 [동아일보], [대중공론], [음악과 시] 등에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1931년(18세)에는 개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문학 동호 단체인 ‘연예사(硏藝社)’를 결성하여 동인지로 『유성(流星)』을 출간했다.
1932년(19세)에 경성고무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하여 군산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며 각 일간지와 문학지에 꾸준히 창작시를 발표하며 문학에 정진하였다. 22세(1935) 때 김선희와 결혼하여 군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1936년 신석초, 서정주, 이육사 등과 ‘시인부락’동인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김상원, 오장환, 윤곤강, 이병각, 이성범, 이육사, 서정주 등과 ‘자오선(子午線)’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 「자오선」발간에 참여하였다. 1938년에는 군산에서 서울 본사로 올라와 다옥동에서 하숙을 하며 문단 활동을 활발히 벌였고, 1939년 첫 시집 「와사등(瓦斯燈)」을 출판한다. 이어 1947년 두 번째 시집 「기항지(寄港地)」를 출간하였다.
1950년에 625 사변이 일어나자 사업을 하던 아우 익균이 납북되었고, 14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하여 초량동에서 살았던 광균은 1951년에 아우 익균이 경영하던 건설실업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고, 그 이후 문단과는 거의 인연을 끊었다가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휴전이 되어 피란지 부산에서 가족을 이끌고 서울 종로구 계동집으로 돌아왔으며, 문단 고별 시집인 세 번째 시집 「황혼가(黃昏歌)」를 출간하였다.
1961년 6월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이후 신문과 월간지 및 회보 등에 간간히 평론, 잡문 등을 발표하던 중 구상, 김중업, 백선기, 이성범, 이한기, 정비석, 차주진, 최호진 등과 함께 ‘회귀(回歸)’동인을 결성하고 산문집과 시, 평론 등을 발표하며 다시 시작활동을 개시하였다. 1985년에는 수필집 「와우산(臥牛山)」을, 1986년에는 네 번째 시집 「추풍귀우(秋風鬼雨)」를 출간하였다.
1988년 겨울에 중풍으로 쓰러진 김광균은 다섯 번째 시집 「임진화(壬辰花)」를 출간하였고, 시인 구상의 권유로 1989년에 카톨릭에 입교하여 영세를 받고, 이후 1993년 11월 23일‘나는 죽어 실업인(實業人)이 아니라 시인으로 불리길 더 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2. 작품 경향 및 주요작품 해설
1) 작품경향
(1) 상실과 소외의식
① 가족 상실의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