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교과교육론 그들을 혐오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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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철학교과교육론

장면 1 : ‘AIDS, 호모새끼’... 모욕적인 문구들이 칠판에 가득 써 있다. ‘바람을 넣은 콘돔’은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날아온다. 학생들은 단체로 수업을 거부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인우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다. 그는 그가 맡은 반의 남학생 제자를 사랑하고 있다. 인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만을 되뇌이며 눈물을 훔칠 뿐이다. - 중 한 장면
장면 2 :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문구가 신촌 길거리를 덮었다. 한편에선 ‘동성애는 지옥이다’라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서울의 한 복판,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퀴어문화 페스티벌이 열렸다. 누가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단 하루만이더라도 성적 소수자들은 웃고 떠들며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 ‘보통’이라 일컬어 지는 이성애자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두려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전에 동성애에 관한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 있다. 반대 측 패널로 참가한 한 목사는 작금의 동성애에 대한 유화적 분위기를 맹비난하면서 몇몇의 무지한 자들이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성애 청정국가였던 대한민국’을 더럽히고 있다면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서양의 경우도 근대까지는 Homophobia적인 경향이 매우 강했고, 우리나라 역시 동성애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금기사항처럼 취급되곤 하였다. 그들의 사랑은 ‘항문성교’로 치부되었고 추잡하고 더러운 짓거리로 손가락질 받아온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는 일종의 ‘질병’으로 취급되며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성애’의 울타리로 넘어올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아온 것이다. 영화 에서는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인우와 인우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우리사회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잘 보여준다. 인우는 동성을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치료를 시도한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해보기도 하고, 자신은 이성애자라고 되뇌이며 괴로운 마음에 취기에 부인과 억지로 관계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인우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타인들은 그를 혐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신과는 ‘다른’ 사랑을 나누는 그를 괴물로 바라볼 뿐이다.
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동성애의 원인으로는 많은 이유들이 제기되어 왔었다. 심리학적 이론, 유전적 이론, 사회학적 연구 등등.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동성애라는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진 못하였다. 그래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동성애의 원인을 연구하기보다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비난의 정당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일 것 같다.’ 188쪽/김봉규/사곰
는 입장에 적극 찬성한다. 동성애의 원인을 연구한다는 것은 동성애를 이미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종의 일탈 내지는 병폐로 간주한다는 사상이 전제된 것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 하 동성애는 또 하나의 사랑이 될 수 없다. ‘틀린’ 사랑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한 비난의 근거는 명확한가. 이 역시 고개를 내저을 수 밖에 없다. 혹자들은 에이즈의 원인이 된다고, 죄악이라고, 자연의 순리에 역행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동성애는 옳지 못한 것이란 답을 정해놓고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라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동성애는 다수의 사랑방식이 아니란 이유로 편견으로 가득찬 배심원들로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법률에 근거하여 단죄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단죄는 사회와의 격리였다.
물론 교수님의 의견처럼 성적 정체성의 문제와 쾌락 지향성의 문제는 엄격히 구분되어야만 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 ‘동성애’라 칭할 수 있다면 후자의 경우 ‘동성연애’라 칭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유화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엉겁결에 동성연애 또한 다른 사랑, 속칭 쿨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양되어야만 한다. ‘톨레랑스’로 대표되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오늘날 전 사회를 떠받치는 이념적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다양성은 어디까지나 합리성을 구비한 객체들에 대하여만 허용되어야 할 것이고, 동성연애와 같은 파국에 치닳을 수 밖에 없는 쾌락주의의 산물의 경우 배척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임우와 현빈은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도, 손가락질할 사람도 없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없다. 그들을 비난했던 자들에 대한 원한도, 간절히 매달리고 싶은 행복도 없다. 그러기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미련없이 줄없는 번지점프를 행한다.(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 그들의 마지막은 아름답다. 비록 그것이 세상의 손가락질에 떠밀린 것이건, 인연이라는 감정에 휘둘린 것이든 간에 그네들은 진정한 행복이 주는 만족감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사랑을 하는 그네들을 인정하여야 한다. 아니 인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너와 나의 구분일 수 있기에 그네들은 그저 사랑을 하는 사람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네들이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게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