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고분벽화 고구려 미인의 얼굴
1.고분벽화란
고분벽화는 장의예술(葬儀藝術)의 한 분야이다. 옛날에는 많은 권력자들이 생전의 부귀영화를 죽어서도 누리려 사람들을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순장이 사회적으로 손실을 가져온다고 자각한 나라들은 순장을 금지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순장을 대체하게 되었다. 실제 사람이나 사물이 아닌 벽화로서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벽화는 장의 미술로서 생전의 가장 기억할만한 삶, 죽은 자의 세계에서 재현되기를 바라는 삶 등이 주요 주제로 등장 한다. 현재 고구려 고분 벽화는 전기 수도 집안 권에 30기 후기수도 평양 권에 76기가 분포되어 있다.
2.벽화 속 고구려인의 의식주
1) 의복
고구려인의 기본 복식은 남녀를 막론하고 저고리와 바지였다. 남자옷의 경우 저고리는 아랫단이 엉덩이에 이를 만큼 길다. 소매의 너비는 신분에 따라 다르며 귀족의 소매가 평민의 것보다 넓었다. 저고리의 깃과 소매에는 천을 대어 장식의 효과를 내었는데 이를 선이라고 한다. 바지는 오늘날의 한복바지와 비슷한데 바지통 역시 신분에 따라 달랐다. 저고리와 비지위에는 발목에 이를 정도의 긴 두루마기를 걸쳤는데. 처음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입었으나 후에는 의례용으로 귀족들이 즐겨 입는 덧옷이 되었다. 여자의 옷에는 바지와 저고리 외에 두루마기가 더해진다. 주름치마, 색동 치마 등 멋을 낸 치마를 바지위에 덧입고 두루마기를 그 위에 걸쳤다. 고구려인의 옷에는 특히나 점무늬가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당시 북방내륙지역 민족 사이에서 유행이었다고 한다. 점무늬를 만들 때는 홀치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무늬를 만들고자 하는 부분에 콩이나 돌 같은 것을 감싸고 실로 묶어 염색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실로 묶은 부분에는 염색이 되지 않아 무늬가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다. 고구려인의 옷은 전기 수도 집안과 후기수도 평양사이에 차이가 보인다. 집안 지역에서는 비교적 밝고 단순한 색상의 바탕천에 점무늬, 마름모무늬, 꽃무늬 가운데 한 가지를 사용하여 수수하게 장식한 옷이 선호되었다. 반면에 평양에서는 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바탕천에 구름무늬 물결무늬 넝쿨무늬 등의 두세 가지를 혼합해 화려하게 장식한 옷이 유행하였다. 고구려인들이 즐겨 쓴 모자에는 건과 절풍이 있다. 건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묶는 모자이고 절풍은 세모꼴모양의 모자이다. 그리고 절풍에 새 깃을 꽂아 장식한 조우관이라는 모자가 있다. 이는 새를 신의 사자로 로 여기는 신앙에서 유래했는데, 신분에 따라 깃의 수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문관과 무관이 의례용으로 썼던 책이라는 관모가 있다. 신발의 경우에는 가죽으로 만든 목이긴 화(靴)와 목이 짧은 혜(鞋)가 일상화로 사용되었고, 전쟁할 때 사용된 밑창에 쇠를 박은 못 신이 있었다.
2)먹을거리
고구려인의 주식은 조와 콩 을 비롯하여 밀, 보리, 수수 기장 등의 곡물류였다. 수확한 곡물은 방앗간에 보관하였다가 디딜방아로 탈곡하여 부엌에 있는 시루에 쪄서 먹었다. 사냥을 즐겼던 고구려인은 사냥한 고기를 고깃간에 저장하였다가 요리해 먹기도 하였다. 장독에는 장과 같은 발효식품을 저장해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에는 부족한 채소를 보충하기 위해 소금으로만 절인 형태의 김장도 이루어졌다.
3)건물
안악 1호분과 3호분을 보면 귀족의 건물은 사랑채와 안채로 나뉘며 앞 편에는 사랑채를 두고 뒤편에는 안채를 두어 좌우에 살림살이와 관련된 부엌, 고깃간, 방앗간, 다락창고, 외양간, 마구간, 차고, 등이 배치되었다. 고분벽화에는 나타나지 않는 평민의 집은 집 자리 유적을 통해 알 수가 있는데 한 칸이나 두 칸 정도의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다. 고구려인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온돌을 사용했는데. 오늘날과 같이 방 전체에 구들을 깐 것이 아니라 한쪽에 쪽 구들을 깔았다. 추운 겨울에 잠을 잘 때만 쪽 구들 위에서 자고 여름이나 일상생활을 할 때는 평상이나 좌상을 많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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