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에라스무스의 비교 -기독교 강요와 우신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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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칼빈과 에라스무스의 비교
-기독교 강요와 우신예찬
인간의 최고선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뿐이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의 최고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보존자이시며,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선한 것들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매 순간마다 영원하고 유일하시며 어디에나 계시는 존재이신 하나님에게만 의존하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그의 신적 기원과 신적 유사관계를 지워버리고 파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런 하나님의 형상 속에 창조되었지만 죄 때문에 지식과 의와 거룩의 고상한 속성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에게 주신 선물 중 “작은 잔여물들”이 현재 그에게 남아있다. 이것들은 그의 모든 죄책을 느끼기에 충분한 뿐만 아니라, 그가 이전에는 고귀했음을 증거하고 그의 신적 소명(신적 부르심)과 하늘의 운명을 계속 상기시킨다.
인간의 사색과 아는 것은 비록 그것이 두뇌에 제한될지라도, 그들의 본질에 있어서 전적으로 영적인 활동이며,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손으로 만지는 사물들의 훨씬 넘어 올라가는 것이다. 그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나 실제적으로 실존해 있고 땅의 물질보다 더 본질적인 실재를 소유한 세계와 그런 사색을 통하여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요. 영원하고 불멸의 진리인 영적 진리인 것이다. 그의 이성은 그런 절대적인 유일한 전적 진리 안에서만이 안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육체가 존재하기 위해서 의존하는 것은 땅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욕구의 세계를 넘어 이성과 양심에 의해서 높고 다른 선한 것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를 받았다. 즐겁고 유효한 것들이란 장소와 때에 따라서 그들의 가치를 가질지라도 결코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즉, 그가 찾고 있는 선한 것이란 환경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선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영원하고 불멸의 영적 선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는 계속해서 그런 고귀하고 절대적인 신적 선 안에서만 안식을 누린다.
성경의 표현에 따르면 이성과 의지 모두가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잠4:23) 감각적인 쾌락과 땅의 보화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모든 것에 만족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이 인간을 만족시키기에는 아무런 힘이 없고 그의 높은 운명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곧 바로 알게 된다. 그러나 소위 이상적인 가치들, 즉 과학, 예술, 문화, 진실한 봉사,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 이웃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에 대한 갈망 등 이런 가치들이 사려(思慮)되었을 때 그 판단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들이 역시 모두 세상에 속해 있어 성경 말씀대로 세상도, 그에 대한 정욕도 다 지나가는 것이다(요일2:17).
먼저 과학과 철학에 대하여 살펴보자. 성경이 요구하는 그런 지식은 그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함에 둔 지식이다(잠1:7). 지식이 이로부터 멀어져 그것과 관련이 없다면 비록 그것이 지식의 이름을 가졌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세상 지혜로 점점 더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지식(과학이든 철학이든)은 언제나 특별한 성격을 띠고 있고 소수 사람들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현존하는 보편적이고 깊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둘째로 여러 과학은 몰락의 시기를 지난 후 다시 재생의 시기에 이를 때는 언제든지 특이하고 과장된 기대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새로운 신비 속에 머물고 그때 그 과학의 목적은 우울해지고 인간은 땅에서 수수께끼 속에서 방황하고 생명과 운명은 모두 신비적인 것이라는 절망적인 고백에 이르는 것이다.
셋째로 과학이 사실 지금 성취한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알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항상 불만이 남아 있을 수는 있다는 것을 기억함이 좋겠다. 이는 덕과 도덕적 기초가 없는 지식은 좀 더 큰 악을 알고 실천하는데 쓰는 죄인의 손에 있는 기구와 같고 지식으로 가득 채운 머리란 부패한 마음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