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과 비디오 로드니 _ 사건
1.로드니킹 사건
-1991년 3월3일 로드니 킹(Rodney King)은 그의 동네친구들과 대낮부터 한밤중까지 올데 잉글리시(Olde English)라는 독한 맥주를 24병이나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갈증이 났고 그와 친구들은 맥주를 더 사러 나갔다. 차의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높게 올리고, 킹은 시속 1백 마일 이상의 속도로 LA거리를 질주했다.(이때 그가 탔던 차는 현대의 엑셀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미러에 나타난 패트롤카의 불빛을 보자마자 경찰의 추격을 피해 8마일 가량 도망쳤다. (그 당시 그는 가석방중 이었으므로 잡히면 즉시 감옥으로 되돌아 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많은 경찰차들이 추격하였으며, 두 대의 헬리콥터와 19명의 경찰과, 적어도 3개시의 경찰들이 동원되었다. 마침내 킹은 밤 12시 30분경에 LA 북쪽 레이크 뷰 테라스라는 마을의 오스본과 풋힐거리의 코너 자갈길에서 멈추어 섰다. 체포하려는 경찰들과 킹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5만볼트의 타이저 총(전기충격 총)도 그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경찰은 킹이 마약을 복용한 것으로 잘못 판단했다. 두 번째 타이저 총이 스테이시 쿤(Stacey Koon)에 의해 발사되었을 때, 경찰들은 매우 흥분했으나 킹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이때 조지 홀리데이(George Holiday)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그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비디오카메라를 작동시켰다. 약 10분 동안 홀리데이는 킹을 굴복시키기 위한 경찰관들의 시도를 녹화했다. 킹은 포장도로로 뛰어들었고, 로렌스 파월(Laurence Powell) 경관이 덮쳤다. 그는 지휘봉으로 킹의 머리를 납작하게 눌렀다. 티모시 윈드(Timothy Wind)와 파월경관은 야간봉으로 킹을 반복해서 내리치고 있었다. 그때에 테드 브리시노(Theodore Briseno)경관은 다시 킹을 때리려는 파월을 저지하려 했으나 나중에는 브리시노도 킹의 머리를 짓밟았다. 지치고 피투성이가 되어 드디어는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 킹은 울분을 참지못하고 울부짖으며 땅에 고꾸라졌다. (그는 당시 왼쪽다리가 부러지고 얼굴도 20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상처를 입었다.) 킹이 옮겨진 후에 홀리데이는 이 몸서리치는 사건을 보도하기 위하여 LA경찰의 풋힐지소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경관은 홀리데이의 이름을 묻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홀리데이는 KTLA에 전화해 5백불에 비디오를 팔았다. KTLA는 애틀란타 CNN과 협정을 맺고 있었으며 아마추어 비디오 방영의 뉴스가치를 고려하는 중이었다. CNN은 홀리데이의 테이프를 발췌하여 방송했다. 이것은 즉시 전세계에 보내졌다. 부시 대통령은 구타 경찰을 혐오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기사는 경관의 행동에 대해 분석하고 논평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LA경찰의 다릴 게이츠(Daryl Gates) 서장에 대한 사임 요구는 엄청났다. 경찰의 잔인함과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여론이 LA경찰에 쏟아졌으나 놀라운 차이점은 분명하고 반박할 수 없는 시각적 증거가 있다는 점이다. 지방검사는 네 명의 앵글로 미국인 경관인 파월, 윈드, 브리스노와 그들의 감독관인 쿤의 재판을 위해서 테이프를 몰수했다. 홀리데이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교외지역인 시미 밸리(Simi Valley)로 이송된 4명의 경찰관의 재판에 첫 번째 증인으로 소환됐다. 이 테이프를 본 모든 사람은 최종 판결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배심원을 설득해서 다른 결론이 나도록 했다. 고음질의 소리, 안정된 그림, 디지털 방식으로 개선된 노출, 그리고 초저속 움직임으로 인해 배심원들은 텔레비전 시청자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았다. 저속은 킹의 작은 움직임조차 과장했고 1초도 안되는 몇몇 행동은 변호사에 의해 공격적인 행동으로 해석되었다. 이런 작은 제스추어는 실제로 거의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 피고측은 경찰봉으로 가격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당하며 업무지침서를 준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홀리데이의 테이프를 50번 정도 보았고 그러는 사이 처음의 공포는 많이 가셨다. 1992년 4월29일 4명의 LA 경찰서 경관은 모두 영국계 미국인 배심원에의해 석방되었다. 무죄로 판결났기 때문에 4명의 경찰에 대한 연방재판에서 검찰은 비디오 테이프가 전달하는 사건의 현황에 많이 좌우되지는 않았다. 연방재판은 LA에서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과 함께 열렸다. 이번에는 파월이 방망이로 후려치는 것을 저지시킨 브리세노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판명났다. 1993년 8월 존 데이비스(Jhon Davis)판사는 쿤과 파월에게 3년이 채 안되는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데이비스는 55번의 쿠타 중에 오직 6번이 불법이고 로드니 킹의 괴상한 취중의 행동은 부분적으로 경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 [로드니 킹 사건 일지]
■91년 3월3일
과속 혐의로 체포된 흑인 로드니 킹이 로렌스 파월 등 4 명의 경찰관 에게 집중 구타당함. 인근 주민이 이를 비디오로 촬영해 방송사에 제공.
■3월4일
문제의 테이프 텔레비젼으로 방영.
■3월15일
킹 구타 경관 기소.
■7월9일
경찰위원회 위 경찰관들의 과잉폭력 인정 보고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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