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사회 문화적 비평으로 본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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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사회 문화적 비평으로 본 『삼국유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회문화적 비평으로 본 『삼국유사』
1.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 『삼국유사』
중국인들은 자기 나라가 사방 오랑캐에 둘러싸인 유일한 문명국이라는 생각과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이므로 세계 속에 있다고 생각하여 ‘중국’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중화주의’와 ‘화의’ 관념이 뿌리내렸다. 이러한 관념은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쳐 작은 중국이라는 의미의 소화라는 말로써 중국인의 시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대니 모화니 하는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고려의 많은 지식인들은 중국에 대한 수평적 혹은 대등적으로 대하려는 관념이 부족했다.
남의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곧바로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한 비하로 이어져 우리 것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고려 후기 이승휴에서 이규보에 이르는 몇몇 지식인들은 우리 것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특히 일연은 중국이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던 상황 하에서 화이 관념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자주 문화적 관점에 의거한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의의를 갖는다.
불교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의 문화사론은 우리만을 내세우려는 편협한 국수주의에 길들여 있지 않았다. 그는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키면서 중국 불교 문화를 수용활용하는 유연성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 문학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자리매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삼국유사』를 통해 전체적으로 중국과 고려 사이에는 소통의 문화적 맥락이 숨쉬면서도 엄연한 배타적 간극이 배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2. 일연의 『삼국유사』찬술 배경 및 의도
1> 시대적 상황과 현실인식
고려사회는 가문과 문벌을 중시하는 호족출신들이 그들의 특권을 누리는 귀족제도였다. 그러나 이런 귀족제도는 그 자체의 내부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세력이 분열도는 조짐을 보이더니 급기야 내부에 큰 동요가 일어 붕괴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벌귀족들과 기층사회는 그 괴리감이 점차 뚜렷이 대두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 유교적 전제정치의 이념이었다. 문벌 귀족들의 유교 이념에 의거한 중앙귀족정치의 전제화는 국가와 사회, 정권과 민중 사이의 유리를 크게 초래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리의 필연적 귀결은 오히려 그 체제내의 반목과 전통적인 자주의식의 상실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성종 때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팔관회와 연등회까지 폐지하기에 이르렀고, 모화적인 정치이념에 크게 경도된 왕들은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횟수가 크게 줄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화론적 문화 정책을 추진함에 따른 이질화로 인하여 자주의식을 약화시켰음은 물론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균형감각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 결과 종래 야만 시 해오던 여진에 대해 칭신하는 굴욕적인 사대외교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은 문벌귀족사회의 내무 모순과 굴욕적 사대외교는 이자겸과 묘청의 난을 불러일으키며 극도의 혼란을 자처하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환난은 김부의김부식 일파에 의해 평정되었지만 이들의 권력 장악은 오히려 문벌 중심의 체제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으며, 사대외교 또한 지속되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이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 한 고려 조정의 부패한 정치와 비굴한 외교는 시정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삼국사기』역시 유교적인 문벌귀족의 관점에서 저술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즉 『삼국사기』는 유교이념과 유교사관에 치중하여 전통적인 토속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 앞 시대의 역사를 다시 편찬한 것이라는 노태돈 외 공저,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창작과 비평사, 1997. p.140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특권을 누리던 문벌귀족들은 그들의 폭압과 멸시에 견디다 못한 무인들의 정변에 의해 도태되고 말았으며, 왕실 편에 섰던 승려들 역시 그들에 의해 여지없이 도륙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무신정권의 폭압 역시 사회와 역사의 전통적인 질서를 회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무신의 독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오히려 문화의 암흑기를 초래한 것은 물론이요, 중기 문신귀족의 횡행이래 발달하기 시작한 사적 대토지 소유는 이에 이르러 한층 더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왕실의 부태 또한 극에 달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