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간 커뮤니케이션-떠남 없는 여정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었음을
살면서 참 많이 쓰는 단어가 ‘우연’이라는 단어이다. 누구를 우연히 만나고, 어디를 우연히 가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그렇게 살다보니 우연히 무엇이 되었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면서 삶은 단지 우연의 연속이라고 말하기까지 이르렀고, 거기에 점점 ‘운명’이라는 단어를 껴 넣기 시작했다. ‘그게 우리 운명이지 뭐’, ‘그게 내 운명인가보지’, ‘인생 뭐 별거 있어? 다 그렇게 사는 거야!’
그런데 어떤 누구도 절대로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는 단 하나의 것이 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낳으셨을 때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어떤 부모도 자식을 낳고 나서 ‘너는 우연히 태어난 아이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축복한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고, ‘기적의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그래서 사람은 다 기적의 존재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할 확률이 생물학적으로 대략 5억분의 1이라고 한다. 숫자로 쓰면 1 / 500,000,000 이다. 쓰기는 쓰지만 사실 이 계산은, 이 숫자는 의미가 없다. 한 쌍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기까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상황들을 거쳐 왔을 것이다. 수 억 개의 옥수수 알들을 매우 큰 냄비에 넣고 팝콘을 튀긴다고 가정할 때, 과연 어떤 선택받은(?) 두 개의 옥수수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동시에 먼저 튀겨져 올라 공중에서 부딪히게 될 것인가를 계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 삶은 복잡하고 삶과 삶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연의 존재가 아니다. 우연이라는 단어는 어떤 확률을 대략적으로라도 가늠할 만한 상황, 일어날 법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기적의 존재다. 기적의 존재에게서 기적의 존재로 태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적을 얼마나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가 기적의 존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나는 ‘우연’을 신봉하는 자였다. 기적이란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또 나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다. 살면서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않은 날이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행복은 내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머리가 크면서 인생에 대한 감사보다는 회의가 먼저 들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난 왜 이렇게 부족한 것이 많지? 왜 우리 집은 가난하지? 왜 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지?’ 등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의문점과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 눈으로 보는 세상은 불공평했고, 어리석었고, 주변 사람들도 죄다 멍청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님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이해할만한 관용과 이해심이 내게 있었을 리 없었다. 소년 시절의 나는 이기심과 독단으로 똘똘 뭉친 입만 살은 소피스트였다. 그러면서도 종교 생활은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의 신앙은 없으면서도 오랜 세월 속에 습관적으로 내재된 의무감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 앞에 신실함의 가면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몸이 가는 것으로 충분했다. 예배 시간에는 대부분 입을 벌리고 자기 일쑤였다. 굳이 힘들게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이유도, 목적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교회는 20년을 다녔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냥 가끔 기도하는 저 너머의 대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맹목적이고 반복적인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온종일 틈만 나면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기 일쑤였다. 친구들을 만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자살하고 싶다’였다. 그 죽고 싶다는 말이 마치 장난으로 툭툭 던지듯 쓰는 나와 친구들 사이의 유행어였다. 물론 진짜로 뛰어내려 죽을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반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사실 그 삶 속에서 나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래서 살아있다고 느끼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 시도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접한 술은 곧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나와 같이 허무와 공허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기들과 선배, 후배와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무엇에든지 의미를 갖다 붙이며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의 대표를 해보기도 하고, 동아리의 회장도 되어보고, 일도 하고 공연도 하고 애인도 사귀어 보고, 사람들에게 나름 인정도 받고 인기도 많아졌다. 그런데 갈수록 마음이 공허했다. 그런 것들을 많이 하면 텅 빈 마음이 채워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깨달아 갈수록 피폐해져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무의미해졌다. 그런 걸로는 부족했다. 겨우 그 순간적인 행복감을 위해 내가 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시작할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無)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남들 앞에서 행복한 척 하던 가면을 집어던졌고, 이내 내 모든 것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술로 맺은 관계는 술로 끝났다. 무의미한 술을 더 이상 먹지 않기 시작하니 그 수많은 인간관계의 연들은 한 달도 못가 대부분이 끊어졌다. 맡고 있던 직책은 모두 집어던지고 위임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점점 귀찮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지만 그럼에도 또 외로워했다. 나름 남보다 잘 쌓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것들은 그저 신기루였을 뿐이었다. 애초에 쌓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벗은 게임뿐이었다. 새벽이 되었는지 아침이 되었는지 밤낮을 분간할 여력도 없이 게임 중독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게임조차도 결국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그것마저 놓으면 정말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았기에, 대체 이 행위를 지금 내가 왜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마우스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수년간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새벽을 깨우며 눈물로 기도하셨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코웃음치고 비웃었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동네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머니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경찰서에서 누나가 납치를 당했다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누나는 당시 SBS 경영진의 최종 합숙 면접을 보기 위해 3일간 집을 떠나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납치라니 믿을 수 없었다. 연락이 온 영등포경찰서로 급히 달려갔다. 경찰서에 누나는 없었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들어와 납치 신고를 하고, 취조 과정 중에 갑자기 뛰쳐나갔다고 했다. 천신만고 끝에 누나와 연락이 닿았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어떤 가족 분들이 거리에서 누나를 발견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하여 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찾아가서 상태를 보니 누나는 굉장히 불안해보였다. 작은 소리나 자극에도 굉장히 민감했고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곧 부모님도 도착하시고 가족이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아침에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니 누나가 소리를 지르며 온 가족들을 깨우고 있었다. 당장 도망가야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집이 도청당하고 있고,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또 그들이 자기를 잡으러 오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누나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 가족들 모두 일단 집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누나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쫒기고 있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태평스럽게 다른 얘기를 하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했다. 한순간 머리를 둔기로 맞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근처 정신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말로는 정신분열증 초기 증상이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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