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경멸한다는 것은 철학과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회화는 자연과학이며 자연의 친아들이다. 왜냐하면 회화란 자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회화는 자연의 손자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자연에서 잉태되었으며, 회화는 바로 자연의 자식들이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정확한 표현은 회화는 자연의 손자이며 신과 깊은 관계에 있다고 해야 한다. (Ash. I. 20. r)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문집 중 한 구절이다. 그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회화를 자연과학과 동일시하며 모두 자연의 손자로 표현하고 있다. 회화건 과학이건 모두 자연에서부터 시작되고 자연의 자식인 우리들에 의해 창조되기 때문이다. 1452년 이탈리아 반도 피렌체의 근교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배웠고, 음악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특히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하였다고 한다. 조각,건축, 토목, 수학, 과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재능을 보였으며 만년에 이르러 과학적 관심을 갖고, 수많은 소묘를 남겼다. 특히 인체 해부를 묘사와 의학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초기 르네상스 초상화의 한 획을 완성하였으며 후기 전성기 르네상스 초상화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하였다. 이런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텔레그라치 교회에 있는 그림 최후의 만찬이라는 역작을 남겼다. 이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가진 만찬을 담고 있는 매우 성스러운 그림이다. 하지만 그의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의 천재성의 인정을 하는가 하면 악마숭배자로 폄하하기도 한다. 과연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우선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1400년대 후반기로 피렌체 문화, 예술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이다. 당시의 통치자는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였다. 이 사람은 코시부 데 메디치의 손자로 아버지 피에로 데 메디치가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일찍부터 권좌에 올랐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피렌체는 유럽 최고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탈리아의 여러 독립 국가들은 로렌초데 메디치의 외교력에 힘입어 평화를 누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시대는 정세가 안정되었던 만큼 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훌륭한 여건응 갖고 있었다. 외교의 달인이었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미술가들을 다른 지방으로 파견하고 그 대가로 정치적인 이익을 얻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82년 밀라노, 스페인의 스포르차궁으로 파견된 것도 바로 빅딜의 결과였던 셈이다. 덕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내의 미술가들의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밀라노에 간 다빈치는예술만 다룬 것은 절대 아니다. 건물을 짓고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대포를 만들기도 하는 등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했고 심지어는 무도회의 무대장식까지 했다.
1482년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갔다. 무려 25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밀라노에서 보내며 네 점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 중 대표작으로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이 있다. 호두 목판 위에 그린 바로 이 그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이 그림의 주인공의 이름은 체칠리아 갈레라니였다. 1467년생으로 부친 파지오는 1467년에서 1470년 사이에 피렌체에서 밀라노 대사를 지낸 대지주였다고 한다. 그녀는 밀라노 공국의 군주의 정부로 들어가 가장 매력적인 여인으로 사교계를 휘어 잡았었다. 하지만 후에 동생에게 정부의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후 한번의 이혼과 재혼으로 이어졌다.
여기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이상한 동물 담비이다. 이 동물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하얀 털을 지닌 담비가 정절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담비는 털이 더러워지면 죽는다는 전설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석은 담비가 그리스어로 ‘갈레’라 한다고 한다. 즉 그림의 주인공 체칠리아의 성인 갈레라니와 유사한 발음때문에 이 여인을 상징하기 위해 그려졌다는 해석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전에 피렌체에서도 지네브라 데 벤치라는 여성을 그리면서 그 여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지네프로라는 나무를 그린적이 있다.그 만큼 다빈치가 미쎄스 갈레라니를 위해 갈레(담비)를 그렸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해석은 담비는 밀라노 스포르차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에 등장하는 동물이었다고 한다. 가문의 상징 동물을 가문의 최고 통치권자의 여인과 함께 그려 넣는 것은 있을 법도 한 이야기다.
이 그림에 대한 많은 평가들 가운데 독일의 미술사가 슈나이더는 청순 무구한 체칠리아의 얼굴보다는 여인의 도발적인 눈과 근육이 불거진 의상의 팔죽지 부분을 죽 갈라 붉은색 속감내를 낸 여인의 옷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삼각 꼴로 터진 어깨 주름은 양쪽으로 금색 천 안감을 대었다. 슈나이더는 이 부분을 여성의 ‘질’로 해석했다. 순결과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여겨 온 족제비는 바로 그 한 가운데에 오른쪽 앞발을 디디고 있다. 슈나이더는 이 같은 시각적 묘사가 여자의 성 관계에 대한 능동성을 의미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홍진경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화가 이전에 자연과학자였던 점을 고려해 슈나이더의 학설에 파란 불을 켜줬다. 그는 자연적 현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그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실로 미술 이외의 작업으로 인간의 해부도를 그리며 자궁 안의 태아의 질묘사,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관 해부도 등 보통 화가들이 건드리지 않은 영역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바로 이와 같은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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