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
◈목차
1. 들어가면서
2.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3.현실에 이론 적용하기
4.수업에의 적용방법
5.마치면서
6.참고자료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
1.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 닥치면 항상 고민을 한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너무 소극적이거나 너무 과하게 대처하는 것은 아닌지. 나 역시도 이런 상황에 많이 부딪쳤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어떠한 상황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범위 안의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학자가 아주 먼 옛날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실존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사실 서양 철학자들을 이번 강의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하였고 수능 과목으로 윤리과목을 선택한 만큼 철학자들의 이름과 해당이론들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보다는 단순히 암기해야할 지식으로만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땐 이 철학자의 생각은 어떤지, 또 나와는 어떤 부분을 동일하게 생각하고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지는 따져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단순히 이론 연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례들이나 초등학교 도덕 교육까지 적용을 해보았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1)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
아리스토텔레스는 북동 그리스의 스타기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왕의 시의인 니코마코스, 어머니는 파이스티스이다. 기원전 367년 아테나로 가서, 플라톤의 화교 아카데미아에서 스승의 죽음까지 20년간 연구생활을 했다. 기원전 347년 플라톤의 사망 후, 동학의 크세노크라테스 등과 함께 아테나를 떠나서, 소아시아 서안의 앗소스에서 그곳의 지배자 헤르미아스의 대접을 받아 그의 조카 퓨티아스와 결혼했다. 기원전 344년부터 2년간은 대안의 레스보스섬으로 옮겨, 테오프라스토스 등과 생물학 연구에 힘썼으며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왕 필립포스에 초대되어서 왕자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로서 7년간을 지냈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한 후, 아시아 원정으로 출발하는 해의 전년, 기원전 335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지배하의 아테네로 돌아와서 북동 교외의 리케이온에 새로운 학교를 열었는데 이 학교가 바로 페리파토스 학파이다. 페리파토스 학파는 서적도 많이 수집되어 후세의 본격적인 도서관의 선구가 되었다. 리케이온교의 학두를 역임하였던 12년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 중 연구교육의 양면에서 가장 원숙한 시기였으나,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급사하자, 아테나에서는 반마케도니아의 분위기가 고양되어서 마케도니아 측의 인물로 간주된 아리스토텔레스는 불경신을 이유로 고소되었고, 그는 ‘아테네인들이 두 번 다시 철학에 죄악을 범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어머니의 출신지인 칼키스로 도망가서 이듬해 그 땅에서 병사했다.
(2)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정리
-인간관-
영양섭취, 생육적 기능
+
감성지각, 운동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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