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까치와 제비 이들은 길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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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까치와 제비 이들은 길조인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까치와 제비
이들은 길조인가
0.들어가며....
1. 하늘의 뜻을 전하는 까치와 제비
1-1 까치의 경우
1-2 제비의 경우
2. 복을 주는 까치와 제비의 둥지
2-1 까치의 경우
2-2 제비의 경우
3. 은혜를 갚는 까치와 제비
3-1 까치의 경우
3-2 제비의 경우
4. 자연현상을 알려주는 까치와 제비
4-1 까치의 경우
4-2 제비의 경우
5. 그 밖의 상징
5-1. 반가운 소식과 사랑을 전하는 까치
5-2 점잖고 예의 바른 까치
5-3 까치성의 유래
5-4 고전소설에 나타난 까치
5-4 고전소설에 나타난 까치
5-5 민화에 나타난 까치
6. 까치와 제비는 언제나 길조인가.
6-1 까치의 경우
6-2 제비의 경우
7 나가며...
*고소설강독*
0. 들어가며...
까치와 제비는 우리나라 새 중에서 우리와 많이 가까운 새 중 하나이다. 굳이 특별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주변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다. 특히 까치 같은 경우는 우리 학교 안에서도 날거나 앉아있는 모습을 대부분 많이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까치와 제비를 떠올려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그 둘은 생김새가 많이 닮았다 .
왼쪽이 까치이고 오른쪽이 제비인데 제비가 머리 쪽에 빨간색과 파란색이 조금 섞여 있긴 하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배가 하얗고 등과 꽁지 부분이 거의 검은색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또 까치와 제비는 둥지를 지으면 매년 그것을 또 고쳐서 사용하는 습성이 있다고 하며 제비와 까치는 주로 둥지를 틀 때 사람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둥지를 튼다. 특히 제비는 처마 밑이나 지붕 밑, 또는 건물 밑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사람과 친숙한 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 할 그 두 새의 중요한 공통점은 둘 다 우리에게 주로 예전부터 길조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두 새가 그렇게 길조로 여겨졌던 사실을 옛 문헌과 이야기 등에서 한번 찾아보고 또 정말 언제나 길조로만 여겨진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1. 하늘의 뜻을 전하는 까치와 제비
1-1 까치의 경우
까치는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의 신라 제 4대 임금인 석탈해 탄생담의 기록에 나타난다.
탈해 이사금―탈해는 혹은 토해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오르니 그 때 나이가 예순두살이였다. 성은 석(昔)이요, 왕비는 아효부인이다. 탈해는 본디 다파나국에서 난 사람이다.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1천리 거리에 잇다. 처음에 그 나라 임금이 여국와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지 7년만에 큰 알 한 개를 낳았다. 왕은 말했다.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버리지 못해 비단에다 알을 싸서 보문과 함께 궤 속에 넣어, 바다에 띄어서 가는대로 맡겨두었다. 처음에는 금관국의 바닷가에 닿았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 다시 진한의 아진포 어구에 닿으니, 때는 시조 혁거세 39년이었다. 이때 바닷가에 있던 노파가 줄로 당겨서 바닷가에 매어 놓고, 궤를 열어보니 한 작은 아기가 있으므로, 그 노파가 데려다 길렀다. 장성하자 키가 아홉 자나 되고 풍채가 뛰어나고 명랑하였으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이가 말했다.
“이 아이는 성씨를 모르니, 처음 궤가 올 때 한 마리의 까치가 날아와 울면서 따랐으므로 마땅히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를 데어 버리고 석(昔)으로 성을 삼고, 또 포장한 궤를 열고 나왔으니 마땅히 탈해(脫解)라 이름 지을 것이다.”......(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