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와 문학 활동
임화, 본명은 인식으로 1908년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소시민의 가정환경 소에서 자라났다. 이후 서울 보성중학교에 입학하나 1925년 모친의 사망과 파산 등으로 학교를 중퇴한다. 어려워진 가계 사정과 당시 유행한 모더니즘 시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프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퇴한지 이듬해인 1926년 카프에 가입한다.
임화가 처음 문학을 발표한 1924년, 그는 성아라는 필명으로 소박한 민요조의 작품 1924년 동아일보 문예란에 투고한 시 ‘연주대’ ‘해녀가’ ‘낙수’ ‘실연 1,2’ ‘소녀가’ 등 6편.
을 동아일보 문예란에 투고한다. 그러나 불과 2년 사이에 표현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낭만주의 등 일본에서 수입되던 문단의 유행들을 빠르게 흡수했고, 그가 카프에 가입할 즘에는 이미 그만의 프로문학을 완성한 후였다.
1927년 임화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 임화는 , 같은 시를 쓰는 한편, 무산계급에 관심을 가지고 , , 등의 평론을 쓴다. 이 작품들은 계급문학 자체나 프로문학 내부의 아나키즘적 경향에 대해 비판한 평론으로 그가 평론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토대가 된다.
1928년 카프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임화는 후년에 영화계로 외도 1929년 , 같은 영화를 촬영한다. 의 개봉은 1930년.
를 나섬과 동시에 시 , 등의 단편 서사시 단편서사시란 실제적인 사건을 극적으로 다루되 시속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를 등장시켜 계급 투쟁에서 비롯되는 사건을 간결하게 압축시킨 새로운 형태의 서정시.
를 발표하여 카프계 계급 문학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1930년 , 등의 평론을 통해 이전에 썼던 자신의 시 를 비판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임화는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혁명적 낭만주의 문학은 현상을 단지 기록하는 수동적 기능에 그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예견해야 한다. 즉 혁명적 낭만주의는 미래의 인간을 직관하고 현재에서 그 단초를 묘사하는 것을 뜻한다.
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1930년 단편 서사시를 완성했다는 평을 받지만 이어진 카프의 해산으로 방황을 하게 된다. 이시기 임화는 1938년 시집 을 비롯해서 등 20여 편의 평론과 등 10편에 가까운 낭만시를 발표하며 이전의 단편 서사시를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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