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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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설가 구보씨는 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설가 구보씨는 왜?
은 미리부터 기대가 컸던 작품이다. 과제를 통해 각색 희곡을 써보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머릿속에 구상해봤지만 소설 은 단언컨대 생각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곡으로 옮기기엔 어려운 점이 너무 많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을 보러가는 동안 과연 어떻게 소설 원작을 희곡으로 구현해냈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각색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은 내 예상을 뒤엎었다.
에는 ‘태원’이 등장한다. ‘태원’은 박태원으로 도입부에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구보’가 나와서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사실 은 원작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했다기보다 소설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 온 것뿐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이것은 ‘태원’의 존재로 설명된다. 소설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 온 것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일은 정말로 ‘태원’이 쓰는 소설인 것이다. 때문에 에서는 희곡의 장르적 특성에 맞게 각색한 부분이 거의 없다. 먼저 원작의 잦은 장면 전환은 프로젝터를 통해 보여준다. 에서는 이 프로젝터가 굉장히 다양하게 활용된다. 본격적인 극의 시작부터 마치 드라마의 오프닝처럼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이라는 타이틀을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구보의 일정을 따라 움직인다. 여기서 배경은 단순히 그 그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동선을 맞추거나 실루엣 등을 사용하여 정말로 살아있는 것 같은 배경을 구현해낸다. 그런데 이런 배경 뿐 아니라 극 중 등장하는 박태원이나 이상에 대한 설명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당시 쓰던 말이나 일본어 대사를 해석해주기도 한다. 즉, 이 프로젝터는 배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극의 보여주기만을 통해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부분들을 이를 이용해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인물들의 대사가 참 특이한데 은 소설 원작의 서술까지도 그대로 대사로 가져왔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서술의 여자부분은 여배우가 남자부분은 남배우가 연기하도록 하였다.
우선 참 영리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과연 이것을 어떻게 연극화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은 이 문제를 ‘태원’의 존재로 간단히 넘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태원’의 존재 명분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극 초반에는 ‘태원’은 작가이고 ‘구보’는 ‘태원’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이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지며 나중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오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을 보며 설마 작품은 곧 작가 자신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뻔한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극은 끝난다. ‘구보’가 나와 의 30회 분을 읽어주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미숙한 내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끝이었다. 도대체 이 연극에서 굳이 ‘태원’을 설정한 것은 무슨 이유라는 말인가? 나는 이 연극에서 ‘태원’의 설정의 이유가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 배경을 구현해 내는 등 프로젝터는 굉장히 잘 만들어졌지만 계속해서 설명을 하는 바람에 종종 내가 연극을 보는 것인지 PPT 발표를 보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으며, 원작 소설의 문장을 그대로 대사로 옮긴 부분은 간혹 두 배우가 한 음절씩 끊어 읽어야 했기 때문에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핵심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내가 연극을 보는 내내 이것을 인내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태원’이 등장해야할 만한 어떤 분명한 의도가 극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끝이 나자 ‘태원’은 단순히 희곡으로 각색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연극 를 관람하였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였다. ‘왜, 이걸 연극으로 만든 거지?’ 물론 는 두 시간 동안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 원작인 공중그네 역시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책이라는 거다. 연극 는 소설 공중그네를 좀 더 현장감 있게 옮겨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은 그보다 더했다. 는 혼자 책을 보며 웃는 대신 그들과 어울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기라도 했지만 은 그조차도 없이 그저 의문만 남았을 뿐이다.
물론 연출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고 또 극 속에 그것을 드러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관객인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그것이 와 닿지 않았다.
은 극장 자체의 규모도 작고 내 좌석이 무대와 가까워 관람 하는 내내 배우들의 에너지가 아찔할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땀과 노력들에 비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