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탐구 - 조만식
1. 생애정리
본관은 창녕, 호는 고당(古堂)이며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한 이후, 재학 중 기독교인이 되었다.
1908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서 3년간 영어를 공부하였 는데 이때 간디의 비폭력주의와 민족주의에 관한 글을 접하고 공감하였다.
1913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있었다.
1915년 오산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19년 오산학교의 교장직을 사직하고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평양감옥에서 1 년간 복역한 후 다시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21년 평양 YMCA 총무와 산정현교회(山亭峴敎會)의 장로가 되었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였다. 이 운동에 대해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충실한
사회운동이었다’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나 당시 일제에 맞서기 위한 민족운동의 성격이 훼손될 수는 없을 것이다. 비폭력·불복종 원칙에 입각하여 적에 대한 증오심으로 자신의 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의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했던 한 조만식의 운 동방식이었다. 이러한 조만식이 주안점을 둔 것은 교육을 통한 후진양성이었다.
1923년 김성수, 송진우와 함께 연정회(硏政會)를 발기하여 민립대학기성회(民立大學期成 會)를 조직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후 숭인중학(崇仁中學) 교장이 되었으나 1926년 일제의 압력으로 사직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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