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조선시대의 상업-조선 초기에서 후기 까지
Ⅲ. 서울의 발달
1) 인구의 증가
2) 행정구역의 개편
3) 주민구성
Ⅳ. 서울과 상업
1) 조선 전기 서울과 상업
2) 15세기 서울 시전의 존재 형태와 발전
3) 15세기 시전 정책의 기조와 감독 체제
4) 조선 후기 서울과 상업
Ⅴ. 결론
Ⅰ. 서론
사회경제상으로 볼 때 상업의 발달은 단순히 상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만 아니라 일정지역의 환경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이런 중요한 상업의 발달 가운데에서도 한양의 상업의 발달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상업지역의 발달과 동시에 서울의 생활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다루어 보도록 할 것이다. 다양한 지역가운데서도 특히 서울 한양을 선정지로 택한 것은 현재나 과거(조선시대)나 정치,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수도이면서, 이러한 특성은 타 지역의 발달과정보다 더욱 급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상업발달과 도시 한양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현상들을 다루고자 한다. 이러한 상업의 발달과 도시의 발달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결론을 도출 한다. 즉, 도시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이 도시에 인구가 유입되고 상업이 발달할 가능성도 있지만, 상업이 어느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그 도시가 발달하는 경우로 생각하는 경우도 예상된다. 필자가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는 아마추어적인 입장이기도하지만, 어느 것이 정답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상업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것 자체도 의미 있는 연구라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 글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려한다. 우선 전반적인 조선시대의 상업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도시 서울에 대해서, 조선 초에서 후기까지의 발전과정을 그릴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 둘과의 접합점을 이끌어내서 서울과 상업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식으로 이글의 논지를 이어나고자 한다. 이 연구가 비록 질적인 효과를 이루지 못할지언정, 다양한 참고논문들을 읽어보며 이해하는 과정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 자체도,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Ⅱ. 조선시대의 상업-조선 초기에서 후기 까지
사실 조선시대 상업은 건국 이후 조선 정부가 펼친 경제정책의 중심이 바로 농업을 근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업의 중요성은 극히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
즉, 생산의 근원을 농업에서 찾아 이를 본업으로 여기고 이를 적극 장려하는 반면에 그만큼 조선이라는 시대에서 상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입지라고 보인다. 물론 조선 정부가 상업이나 수공업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할 수도 없었던 것이, 상업은 국가를 비롯하여 관인, 양반 사대부등 비생산 인구의 처지에서는 더욱 절실하였기 때문이다. 박평식, 1999,「조선 초기 상업의 인식과 억말책 」『동방학지』, 延世大學校國學硏究院 . p.329.
하지만 역시 상업은 말업(末業)에 속했고 선비나 농업을 중요시하는 관념은 존재한다. 하지만 17세기에 이르면 조선 후기적 사회질서가 형성되는 급변기라 할 수 있다. 사회, 경제, 정치, 사상 제반 분야에서 질적인 변화가 대부분 17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 많다. 즉, 상업사의 측면에서도 이시기는 대동법을 실시하고 국가적 상품화폐경제의 변화와 공인층의 성장, 금속화폐의 주조와 유통, 한중일 중개무역의 성행으로 인한 무역이윤이 쌓였다. 또한 시전상업체제의 동요와 재편, 농촌장시의 발달과 포구 및 도시상업의 성장 등으로 18세기 상업체제를 구성했던 요소들이 형성되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던 것이다.
Ⅲ. 서울의 발달
1392년 개창된 조선왕조는 태조 3년인 1394년에 고려왕조의 수도인 개성에서 새로운 수도인 서울로 천도하였다. 서울한양은 고려시대에도 남경으로서 주요 도시였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수도로 성장한 것은 조선왕조의 개창 이후 부터였다. 조선왕조 이래 오늘날까지 한국의 역사는 당연히 서울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물론 평양이나 개성 등도 상당한 입지를 갖고 있었고, 영남지방의 경우도 사경사 수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듯이 조선의 사회변화를 살펴보는데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이 조선왕조의 수도로 형성되는 과정은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형성과정은 본 연구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서울한양이 설립되는 시점부터 조사하고자 한다.
하루에도 2번씩 등. 하교 길에 종로를 지날 때면 세종로를 비롯한 조선의 한양이 중심했던 부분을 관통하는 각종 문화재를 지나친다. 그 당시의 위용과 기능은 현재 할 수 없지만, 몇 백년간 그곳에 위치한 그 자체만 보더라도 조선의 서울한양이 새롭게 여겨진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서울이 도시 공간적으로 행정적으로 수도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서울의 도시공간은 명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도 있다. 물론 600년 전의 서울역시 풍수 지리적으로 명당으로 여겼고, 여러 의미에 따라 궁궐, 종묘, 사직, 시장, 도로 등의 터를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도시 건설을 착수했음을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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