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 현대철학
교재
몸, 주체, 권력2장
2장 몸에 대한 전통적 견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몸
고대 서양인의 몸에 대한 사고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도 속에서 파악되었다. 보이는 것은 몸, 보이지 않는 것은 영혼에 대입되었는데 헤라클레이토스를 거치면서 양자가 구분되어 인간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가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진전되어 플라톤에 이르면 몸과 영혼은 단순히 인간을 구성하는 두 요소일 뿐만 아니라 영혼이 몸보다 우월해지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 우월성의 기초에는 오르페우스 종교와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인에 있어 일반적이었고 이러한 믿음으로 인간은 죽음을 초월해서 영혼에 의해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영혼은 두 가지 부분, 곧 가사적(可死的)인 부분과 불사적(不死的)인 부분으로 파악되었다. 가사적인 부분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자연적 원리지만 몸과 함께 소멸한다. 그러나 불사적인 부분은 몸의 죽음 너머에서도 영원히 존재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형상eidos이 된다.
또한 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도 속에서 상기(想起, anamnesis)는 보이지 않는 영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상기는 현재 살아있는 인간이 유한성과 부정확한 인식능력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존재이자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형상을 파악할 수 있게하는 영혼의 중요한 능력에 해당된다. 상기와 같은 영혼의 지성은 가시적이면서 2차적인 자료를 통해 원인 자체로까지 인간이 도달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 정의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같은 구분의 논리가 아닌 결합의 논리로 접근하여 몸과 영혼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그 개념은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 이어지며 현실태와 가능태로도 설명된다. 즉 질료는 형상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 목적이 달성된 상태 혹은 달성되어야 할 상태를 현실태라고 하며 이 목적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가능태라고 한다면, 영혼은 몸의 현실태이고 몸은 영혼의 가능태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에 대하여 ‘제일 현실태’라고 보았다. 이때 현실태는 지식의 단계를 의미하는 제일 현실태와 숙고의 단계를 의미하는 제이 현실태로 구분된다. 지식은 아직 숙고로 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제이 현실태에 대한 잠재태이기 때문에 제일 현실태이면서 제이 잠재태(제이 현실태에 대한 잠재태)이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을 생명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제이 잠재태인 영혼은 생명을 실현하기 위해 잠재적으로 능력을 구비해놓은 상태이지만 동시에 자연적 신체에 대해서는 형상이라는 점에서 제일 현실태가 된다. 유원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신이론에서 이원론적 해석의 가능성?, 『중세철학』19, 한국중세철학회, 2013, 15-16쪽.
이로써 영혼과 몸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하여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표리(表裏)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같은 몸과 영혼의 연결성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도 논의한 바 있다. 상기한 몸-영혼의 연결관계가 자연학의 논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는 영혼의 순수성, 불멸성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결국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몸 논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순수성, 불멸성을 근거로 보이는 영역, 곧 몸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 자리시켰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이 몸과 영혼의 연결을 논의했다고 갈음할 수 있다. 이들의 논의는 보이는 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당시인이 믿은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리를 찾고자 시도되었던 것이다.
근대 철학에서의 몸
데카르트는 영혼과 물질을 각각 독립적인 실체로 보고 서로가 서로를 규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양자를 연결지어 사고하려 했던 것과 달라지는 부분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몸은 물질로서 물질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기계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몸의 성장과 섭취, 운동, 자극 등은 이러한 유기적 결합물의 기계적인 작용에 의한 것으로서 영혼의 작용이 아니라 ‘동물정기’라고 하는 물질의 작용으로 본다. 다만 비물질적인 정신적 영혼은 이와 같은 비자의적인 운동이 아니라 자의적인, 의지적인 운동에서 유기체의 조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된다. 데카르트의 영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생명의 원리로 보아 살아있는 것 일반에 모두 적용시켰지만 데카르트의 경우 영혼을 정신이라는 측면에 집중시켰고 그중에서도 사고하는 능력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영혼을 가진 것의 범주는 인간으로 축소된다. 유원기, 앞의 논문, 9-10쪽.
영혼이 유기체의 조정에 관여하는 방식은 운동 방향을 바꿈으로써 운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지며 이때 영혼이 개입하는 것은 동물정기의 원천인 송과선(松果腺)을 의지적으로 조작함으로써 물질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스피노자는 연장으로서의 물질과 사유로서의 영혼이 모두 실체라는 입장을 갖는다. 이전에 데카르트는 영혼의 본질을 사고로 보고 신체의 본질은 공간에 뻗어나가 있는 연장성으로 보아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는 영혼과 사고할 수 없는 신체는 접점을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데카르트에 있어 영혼과 신체는 모두 실체성을 갖지만 양자는 이원론적으로 대치할 뿐이기에 결국 그의 논리 속에서 영혼은 신체의 기능이 정지한 뒤에도 독립적으로 생존가능한 것이 된다. 유원기, 위의 논문,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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