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
[水滸傳]
수호전[水滸傳]
1. 수호전의 작가
민간에 전설로 또는 화본이나 잡극의 형태로 사랑 받아 호던 수호전이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정착된 것은 원말명초로 이 작업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문인이 바로 시내암과 나관중 마지막장 별첨이다. 그런 까닭에 수호전의 작자는 크게 시내암 설과 나관중 설로 나윈다.
문헌상의 기록에 의하면[수호전]의 작자는 나관중과 시내암이 각각 독립적으로 지은 것이라는 주장과 두 사람의 공동작이라는 주장으로 정리 된다. 또한 두 사람의 공동작이라는 주장의 경우도 다시 나관중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시내암이 정리했다는 주장과 시내암이 쓰고 나관중이 그 뒤를 이어서 썼다는 주장으로 나뉘다. 현재로서는 누가 수호전의 진정한 작자인지에 대해서는 확인 할 수 없다. 다만 수호전이 현재의 모습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 작품이 어느 특정한 일개 문인의 손에 의해 창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시내암이나 나관중은 수많은 수호전 이야기 편집자 가운데 대표격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시내암 [施耐庵, 1296~1370]
이름은 자안(子安)이고 내암은 그의 자(字)이다. 중국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에서 태어났다. 나관중(羅貫中)과 함께 《수호지(水滸誌)》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삼수평요전(三遂平妖傳)》 《지여(志餘)》 등을 지었다고 한다.35세에 진사(進士)가 되어 2년간 관직에 있었지만 상급관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관직을 버리고 쑤저우[蘇州]에 칩거하여 문학창작에 전념했다고 전해지고, 원말(元末) 군웅(群雄)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城)의 난(1321-1367)에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며 자세한 경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수호지》에 대해서는 시내암이 수집기록하고 나관중(羅貫中)이 찬수했다는 주장, 그가 창작하고 나관중이 편찬한 것이라는 주장, 71회까지는 그가 쓰고 나머지는 나관중이 덧붙였다는 주장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오늘날에는 대체로 민간전승을 기초로 그가 예술적으로 각색하여 완성시킨 것으로 본다. 원말 명초의 변혁기를 지내면서 조정의 부패상과 사회혼란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나관중 [羅貫中, 1330~1400]
자 관중. 호 호해산인(湖海散人). 본명 본(本). 산시성[山西省] 루링[廬陵] 사람. 1364년에 살았다는 기록 외에 전기(傳記)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최하급의 관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송원시대(宋元時代)에 유행한 강담(講談)의 이야기책을 기초로 하여 구어체 장편소설을 지은 선구자로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및 시내암(施耐庵)과의 공저인 《수호지(水滸誌)》의 2대 걸작을 비롯하여 《수당연의(隋唐演義)》 《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 《평요전(平妖傳)》 등의 작품이 있다. 희곡에는 3편의 작품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조태조용호풍운회(趙太祖龍虎風雲會)》 하나뿐이다.
2. 수호전의 장르
영웅소설
영웅소설은 역사소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구별되는 점도 있다. 지금까지의 소설사가들은 양자의 구분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양자를 분명히 구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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