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론
1. 생애와 문학 활동
조태일은 1941년 9월 전남 곡성에 있는 동리산 태안사에서 승려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인은 산중의 고적한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산짐승과 어울리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체험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서 혼란스럽던 일제 말기와 1948년 여순 사건을 겪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시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광주로 피난을 하게 되고 곧이어 6.25를 맞게 된다. 조태일은 일제 말기를 거쳐 해방 공간, 그리고 한국전쟁과 4.19로 이어지는 격변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조태일은 이들 사건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조태일의 『연가』(1985)를 보면 친구들의 부모가 무참히 대창에 찔려 죽고 하루아침에 머슴이 주인을 죽이고 산으로 들어가던 광경, 그리고 전국토에 벌어진 참혹한 대살륙의 장면들을 목도하면서 시인이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과 한과 미음 등의 온갖 감정들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시 속에 모두 쏟아넣었음을 알 수 있다.
1962년 광주고등학교, 1966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1964년에는 시 〈아침선박〉으로 《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을 등단시켰다. 그러나 《시인》은 창간 1년여 만에 당국의 압력으로 폐간되었다. 특히 『국토』는 민족주의와 민중의식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실어 70년대 말~80년대 초 판매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1974년에는 고은·백낙청 및 신경림·염무웅·박태순·황석영·조해일 등과 함께 민족문학운동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을 주도했다.
그의 삶처럼, 그의 시는 강하고 뜨거운 언어로 이루어져있다. 펄펄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면서 독한 언어로 시를 쓴, 그 동안의 우리 시사에서는 드물게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남성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조태일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면은 그 자신의 유년기 체험과 결합하여 더욱 역동적이고 더욱 생기에 찬 목소리로 나타나게 된다.
조태일은 1999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37년여에 걸쳐 모두 8권의 시집을 발간한다. 『아침선박』,『식칼론』, 『국토』(1975),『가거도』(1983),『자유가 시인더러』(1987,)『산속에서, 꽃속에서』(1991),『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혼자 타오르고 있었네』(1999)
시인으로 활동한 기간에 견주어 볼 때 조태일은 다작의 시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조태일 시인에게 시가 삶과, 보다 엄밀히 말해 현실에서의 실천적 삶과 분리되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충분히 납득하는 일이다. 그에게 시는 예술을 위한 예술 활동도 아니었으며 지적인 유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에게는 실천을 위한 열정의 소산이자 실천과 등식이 성립하는 실천의 등가체가 바로 시였다고 할 수 있다.
2. 시세계
조태일은 민중적 생명력에 대한 일관된 긍정과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통해, 단절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낙관적이고 근원지향적인 시세계를 완성해간 우리 시대의 탁월한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생명에 대한 추구라는 일관성을 보여주었고, 민중적 삶을 직접적 소재로 삼은 데서 자연 사물로 시선을 돌리는 변모 양상을 보여주었다. 즉, 조태일의 시세계는 ‘불꽃’(격정, 현실)의 시학에서 ‘풀꽃’(관조, 자연, 사물)의 시학으로 옮겨간 여정을 매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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