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1904~1938) - 순수시론의 전개양상
1939.1940
유작‘박용철전집’ 2권
1904출생
1916‘휘문의숙⇒배제’ :자퇴
1919.12결혼
1934. ‘문학‘발간
1938.5
사망(결핵)
1929 이혼
1929.8 : ‘영랑에게 보낸 사신‘
1930.3
‘시문학‘발간
1930 : ‘시문학창간에 대하여‘
1931.5 재혼
1931.11
‘문예월간‘
1931 : ‘신미시단의 회고와 비판’
문예월간 창간호 : ‘효과주의적 비평논강’발표
1935 발간
‘정지용시집’
‘김영랑시집’
1935 : ‘을해시단총평’
1936 : ‘병자시단의 일년성과‘
‘기교주의의 허망’
1938 : ‘시적 변용에
대해서‘
1921동경 ‘청산학원’ 중학부
김영랑과의 만남 : ‘理科 ⇒ 詩(문학)‘로 입문
1923동경
외국어전문,연희전문
1934 : 비평문 ‘조선문학의 과소평가’
1. 생애
2. 순수시론의 전개양상
박용철은 문단에 등장한 이후 시인으로서, 비평가로서, 번역가로서, 문예지 편집인으로서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이 많은 업적 중 가장 무게중심이 주어진 것은 비평가로서의 박용철이다. 박용철의 순수시론은 ‘영랑에게 보낸 사신’(1929), ‘시문학 창간에 대하여’(1930), ‘신미시단의 회고와 비판’(1931) 등에서 볼 수 있는 순수시론에서 출발하여, ‘을해시단총평’(1935), ‘병자시단의 일년성과’(1936), ‘기교주의의 허망’(1936), ‘시적변용에 대해서’(1938) 등과 같은 후기의 본격적 순수시론으로 전개된다.
1) 전기 시론 - 존재의 시학
㉠ 시라는 것은 시인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한낱 존재이다. 조각과 회화가 한 개의 존재인 것과 꼭같이 시나 음악도 한낱 존재이다. 박용철 (조선일보, 1930.3.2), 전집 2권, p142~143.
㉡ 그전에는 시를 (뿐만 아니라 아무 글이나) 짓는 기교(골씨)만 있으면 거져 지을셈 잡었단 말이야 그것을 이제 와서야 속에 덩어리가 있어야 나오는 것을 깨달었으니 내 깜냥에 큰 발견이나 한듯 可笑! 박용철 (1929.8.15), 전집 2권, p326.
㉢ 우리는 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의 살과 피의 맺힘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시는 지나는 거름에 슬적 읽어치워지를 바라지못하고 우리의 시는 열 번스무번 되씹어익고 외여지기를 바랄뿐 가슴에 느낌이 있을때 절로 읊어나오고 읊으면 느낌이 이러나야만 한다. 한말로 우리의 시는 외여지기를 구한다. 이것이 오즉 하나 우리의 오만한 선언이다. 박용철 창간호 후기(1930.3), 전집 2권, p218~219.
① 시는 하나의 존재
㉠의 첫 번째 문장에는 시를 하나의 ‘존재’로 보는 박용철의 전기 시론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는 시를 하나의 자율적 객체로 본다는 점에서 ‘시와 시인의 분리’, ‘시와 현실의 분리’와 연결된다. 시를 쓴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과는 관계없이 오직 그 시 자체가 지닌 객관적 아름다움의 요소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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