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혁련정의 ‘균여전’,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에서 그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향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1075년의 균여전이다. 균여전은 균여의 제자 혁련정이 편찬한 균여의 전기로 향가작품 11수가 실려 있다. 균여전 제 8권 譯歌現德分의 원문을 살펴보면,
十一首之鄕歌 詞淸句麗 其爲作也 號稱詞腦.......
즉 ‘11수의 향가는 문장이 맑고 글귀가 아름다워 그 이름을 사뇌라 한다.’ 라는 문장인데, 11수의 작품이 향가라는 말이 분명하게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균여가 창작한 작품이 향가였고, 또한 향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학 양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문장이 맑고 글귀가 아름다워 사뇌라고 한다는 향가가 사뇌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이것은 동일 개념이라기보다는 11수의 작품만을 일단 사뇌라 지칭하는 것으로 사뇌는 향가의 하위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詞淸句麗는 향가와 사뇌가 둘의 성격을 동시에 밝혀주는 것으로 뒤에 원문과 같이 살펴보면,
(중략)...... 可欺貞觀之詞 精若賦頭 堪比惠明之賦......
‘향가 혹은 사뇌가는 중국의 詞, 賦를 능가할 정도로 사구가 맑고 아름다웠다.’는 한 문장으로 말 할 수 있다. 이는 향가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대목으로 과거 중국의 문화에 의존하던 우리가 역으로 중국을 능가할 정도로 그 실력이 뛰어났고 향가는 단순한 문학양식이 아닌 국제적인 아름다운 노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향가는 중국의 한자를 우리말화한 향찰로 표기된 것이기는 하나 향찰은 중국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고 우리나라 사람만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자였다는 점에서 중국의 문자를 빌어다 썼지만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균여전에서 향가에 대한 언급이 나온 부분을 두 곳 더 지적할 수 있는데,
意精於詞 故云腦
이는 위에 詞淸句麗와 같이 사뇌가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으로 ‘뜻이 노랫말보다 더 정심하다.’는 말로 해석 되며 사뇌가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닌 그 뜻이 심오한 문학적 경지에 오른 작품으로써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이 노랫말에 그대로 투영되었음을 시사한다하겠다. 이는 사청구려와 함께 생각해 보자면 사뇌가는 노랫말 하나하나가 그 뜻이 심오하고 섬세했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를 이뤄 문장이 되었을 때는 더 없이 맑고 수려해 가히 중국을 능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夫詞腦者 世人戱樂之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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