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 사씨남정기 작가 소개 사씨남정기 작품소개 사씨남정기 작가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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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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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씨남정기
- 목 차 -
Ⅰ. 작품소개
1. 작가 소개
1) 작가의 생애
2) 작가의 사상과 문학
2. 창작동기
1) 여러 가지 창작 동기
2) 대표적인 창작 동기 논의와 방향성
3. 가정소설의 특징
4. 줄거리 소개
Ⅱ. 작품분석
1. 등장인물
1) 등장인물 간의 관계
2. 사씨남정기 내의 갈등구조
1) 처첩 간의 갈등
2) 선악의 대립
3) 갈등 해결의 방법
3. 작품의 의의
Ⅲ. 기출문제 및 예상문제
Ⅰ. 작품소개
1. 작가 소개
1) 작가의 생애
김만중은 1637년(인조 15년) 병자호란 피란 중에 태어났다. 김만중은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남다른 가정교육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 익겸은 일찍이 1637년 정축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까닭에, 형 만기와 함께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며 살았다. 윤씨 부인은 본래 가학이 있어 두 형제들이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항상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한 모든 정성을 다 쏟았다고 전해진다. 궁색한 살림 중에도 자식들에게 필요한 서책을 구입함에 값의 고하를 묻지 않았으며, 또 이웃에 사는 홍문관서리를 통해 책을 빌려내어 손수 등사하여 교본을 만들기도 하였다. 김만중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훈도를 받고 16세(효종3년)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고, 29세(현종 6년)에 정시에 장원급제하였다. 38세(현종 15년)에는 금성에 유배되었고 49세(숙종 11년)에는 병조판서가 되었고, 51세(숙제 13년)에 선천에 유배되어 거기에서 명작 을 지었다. 그리고 이듬해 풀렸다가 53세에 다시 남해에 귀향 갔고, 삼 년 후 거기에서 사망했다.
2) 작가의 사상과 문학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은 이전의 여느 문인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년에 와서 불운한 유배생활로 일생을 끝마쳤다. 그러나 생애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상당한 권력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득의의 시절을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총명한 재능을 타고났으며 가학을 통해 그의 상당한 경지의 학문적 성과도 성취하였으며, 김만중의 사상의 진보성은 그의 뛰어난 문학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예찬론’은 상당히 주목을 받는 논설이다. 그는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김만중이 살던 시대는 분명 중세의 봉건질서가 붕괴된 시대는 아니었던 만큼 김만중의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일종의 ‘국자의식(國字意識)은 충분히 강조될 만하다고 평가된다. 더구나 그가 「사씨남정기」와 같은 국문소설을 상당수 창작했다는 점과 관련해 보면 허균을 잇는 문학사적 역할과 함께, 조선 후기 실학파 문학의 중간에서 훌륭한 소임을 수행한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2. 창작동기
1) 여러 가지 창작 동기
김만중이 「사씨남정기」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이미 소설이 쓰인 당시부터 이러저러한 견해들이 있다. 이 작품이 ①축첩 문제와 관련하여 일반 부녀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지었다는 설, ②장희빈 사건과 관련하여 성심(聖心)을 깨우치기 위해 지었다는 설, ③유배 상황에서 왕에게 자신의 결백을 하소연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 ④관음신앙으로 부녀대중을 교화, 구제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창작 동기와 관련된 모든 논란은 이 작품과 장희빈 사건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이견에서 연원된 것임이 드러나며, 창작 동기와 관련된 논란을 이러한 두 관점의 대립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 대표적인 창작 동기 논의와 방향성
그 가운데에서 많이 논의되는 것이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숙종의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경계하기 위해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김만중이 1689년 숙종이 왕후인 민씨를 버리고 궁녀인 장소의를 왕후로 삼은데 대하여 상소한 탓에 남해로 귀양살이를 가게 된 사실을 고려할 때 소설 「사씨남정기」의 창작동기를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기록되어 있는 기록되어 있는 사실과 결부시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이 소설의 창작동기에 대하여 다 밝혔다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김만중의 증손이 「북헌잡설」에 ‘선생도 소설「사씨남정기」를 우리 글자로 썼는데 그것은 항간 부녀자들이 다 읽는 것을 통하여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쓴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김만중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의 다른 하나는 바로 우리말과 글자로 표현한 국문소설을 써서 항간 부녀자들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에게 축첩제도를 비롯한 당대 사회의 불합리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