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공통 작성 사항
1. 저자 - 김창업(1658~1721)
「노가재 연행일기」의 저자 김창업(金昌業)의 자는 대유(大有), 호는 가재(稼齎), 또는 노가재(老稼齎)이다. 본관은 안동으로 이른바 안동김씨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명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효종 9년 1658년). 증조부는 인조(仁祖)때 유명한 척화(斥和) 대신이요, 명필이기도 하였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아버지는 숙종(肅宗)조의 영의정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숙종조의 영의정을 지낸 장형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여한 8대가(麗韓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는 문장가인 중형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창협과 더불어 대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던 삼형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까지 대대로 이어온 명가의 자제로 이름이 높았다. 그 역시 어려서부터 문사에 능하였고 시를 잘 지었다 한다. 그는 24세때 숙종 7년(1681)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 역시 그 형제들과 병칭되는 유명한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화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화양서원(華陽書院)에 모신 송시열(宋時烈) 화상은 그가 그린 것을 화공이 전사(傳寫) 전사(傳寫) : 서로 전하여 베껴 씀.
하였다 한다.
1712년 그의 형 창집(昌集)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그를 따라 청에 다녀와 기행문 「노가재연행일기(燕行日記)」를 썼다. 여기에는 그곳의 산천(山川)·관방(關防) 관방(關防) : 국경을 지킴.
·사관(寺觀)·시암(市庵)·인민(人民)·요속(謠俗)·비판(碑版)·서적(書籍)·기용(器用)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경종(景宗) 2년 (1722) 신임사화(辛壬士禍) 신임사화(辛壬士禍) : 1721년(경종 1)~1722년 왕통문제와 관련하여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사건.
로 형 창집이 정변을 당하여 거제로 유배되자 울분이 겹치고 신병이 악화되어 64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대표적인 문집으로는 「노가재집」이 있고, 그림으로는 「추강만박도(秋江晩泊圖)」가 전한다.
2. 여행 당시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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