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 전통 문화[판소리]의 現存的 의미를 구하는 방법
Ⅱ. 판소리의 기능적 특질과 가능적 자질의 縱橫的 고찰
-1. 판소리는 무엇이었고
-2. 판소리는 무엇이며
-3. 판소리는 무엇이 돼야하나
Ⅲ. 맺음말 : 판소리는 ‘소리’이다 - 판소리의 장르 變奏 원칙
판소리의 기능적 특질과 가능적 자질
Ⅰ. 머리말 : 전통 문화[판소리]의 現存的 의미를 구하는 방법
Ⅱ. 판소리의 기능적 특질과 가능적 자질의 縱橫的 고찰
-1. 판소리는 무엇이었고
-2. 판소리는 무엇이며
-3. 판소리는 무엇이 돼야하나
Ⅲ. 맺음말 : 판소리는 ‘소리’이다 - 판소리의 장르 變奏 원칙
Ⅰ. 전통 문화[판소리]의 現存的 의미를 구하는 방법
어떤 일을 하든지 가끔씩은 현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일이 과거(過去)나 고전(古傳) 일단은 ‘古傳’으로 두고 시작하려 한다. ‘古典’으로서의 의미는 논의가 적정하게 이뤄졌을 때 부여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에 관계된 것일 땐 그 문(問)의 빈도 및 문답의 폭이 무척 늘어나는 것 같다. 그것들이 지금 당장 생존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데다가, 그동안 고양된 필요성이 실은 막연한 소구(訴求)- 우리의 것이므로 계승해야 한다는, 일종의 순환 논리 -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터이다. 전자의 이유라면, 경제 활동 및 경제적 득실과 밀접한 상관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분야에 모두 걸리는 문제이므로 별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후자의 이유라면, 과거나 고전에 관계된 일에만 해당하는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앞길을 모색할 문제가 된다.
막연한 소구가 그대로 통하려면, 과거나 고전의 무엇들이 우리가 기꺼이 ‘모(母)-’를 붙이는 대상처럼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부)모’, ‘모국’, ‘모교’ 등이 주는 친밀한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사정은 그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민족정신이 없다느니 애국심이 약하다느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옛날에 그 무엇들이 존재했던 이유는 민족정신이나 애국심이 아닌, 기능성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에 실시되는 전통에 대한 강조와 교육은 기능성보다는 민족정신[애국심]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전통 문화의 담지자(擔持者)들이, 그 누구보다 현대적 감각이 탁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지닌 신념만 내세운다면 그것은 강제에 불과하다. 신념은 장기적 안목 아래서 꾸준히 고양되는 한편, 감각적 변신을 거듭함으로써 끊임없이 현존적 기능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통 문화에 대해 현존의 의미를 묻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며 부지런히 계속돼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구비전승되는 우리 전통 문화의 하나인 판소리의 현존적 의미를 고구(考究)하는 데 있다. 전술한 ‘막연한 소구’는 이 글이 지양할 바이므로, 판소리의 특질들이 기능적 측면에서 현대에 얼마만큼 긴밀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다섯 가지 시각- 대중성, 전문성, 서사[이야기]성, 현재성, 개방성[잡식성] -으로 대별하여 논의해보려 한다. 전통 문화의 담지자를 자임하는 필자에게, 판소리가 현대에도 살아서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은 물론 확고하다. 다만 두려운 점은, ‘신념’을 강제함으로써 그 이유를 대지 않겠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논의를 펼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필자의 신념이 그만큼 확고함을 방증(傍證)하는 것으로 여겨주면 고맙겠다.
이렇게 나눠서 하는 것은, 이제 막 판소리를 알아가는 필자가 범할 위험성에서 그나마 이 글을 지켜내기 위한 장치를 두려는 것이다. 즉, 균형과 체계를 견지하려는 이유에서다. ‘Ⅱ’에서 ‘1~3’의 구분은 각 항의 논제가 지시하듯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변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 엄밀한 사적(史的) 구획은 아니며, 글 전체 논지를 향하는 단계적 고찰로서의 성격이 짙다. 즉, ‘Ⅱ-1’은 판소리의 본성적 측면, ‘Ⅱ-2’는 현재의 모습, ‘Ⅱ-3’은 미래의 지향점을 중심으로 논한 것이다. 그리고 각 항마다에서 앞의 다섯 가지 시각을 차례대로 논의했다(①~⑤).
이 글은 강의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깨달은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정병헌, 2005년 1학기. 따라서 이 논의가 어떠한 성과를 보인다면, 그 공(功)은 전적으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몫이며, 반대로 필요악적 요소의 하나를 보탠 것이 된다면, 그 과(過)는 모두 미흡하고 불민(不敏)했던 필자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과한 욕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 생명이 깃들어서, 그것이 다시 판소리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게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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