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의 이해 - 진지땅굴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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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주사회의 이해 - 진지땅굴의 현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진지땅굴의 현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진지땅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일제에 한반도가 시달리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반도와 제주도 모두 일본의 본토결전의 준비지역이 되었고, 이 때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 강제적으로 노동을 해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면 어려운 용어와 내용이 많아 전부 이해하기에는 힘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이 미국을 막는데 제주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함락되면 일본은 불리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본의 ‘본토결전’에 있어 제주를 중요시 여기고 이곳에 공격할 때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특정 지역에 실시한 시설인 ‘진지’를 만들고 전투준비를 했다. 일본은 제주의 수많은 곳에 진지 땅굴을 만들었는데, 이 진지땅굴을 만들기 위해서 공사에 투입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중 대다수가 제주도민들이었다. 식민지 지배를 받던 제주인들은 강제적으로 그곳에 끌려가 하루 종일 일본군의 전쟁대비를 위해 일해야 했다. 진지땅굴은 만들다가 땅굴이 무너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계속 일을 해야 했고, 다른 장비 없이 오직 곡괭이와 맨손으로 땅굴을 파야만 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진지땅굴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이 직접 팠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깊게 파져있었다. 땅굴의 길이 또한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 나왔던 제주인들의 인터뷰 영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짠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들께서 아픈 손을 보여주며 그 때의 참혹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는데 화가 나고 조선이 식민지라는 이유로 그런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고,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흠집 같은 구멍을 냈다. 그러고 나서 광복이 된 후 이 땅굴은 그냥 방치된 채 제주인들의 아픔만을 담은 곳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지땅굴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송악산 해안 일제 진지동굴과 평화박물관 안에 있는 거문 오름 일제 진지 땅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두 곳은 내가 어릴 적에 모두 다녀왔던 곳 이였다. 그때는 어린마음에 보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일제 본토결전의 내용을 알고 나니 모두 제주 도민들의 아픈 상처와 슬픔이 담긴 장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송악산 해안 진지동굴 같은 경우에는 과거에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던 장소이지만 현재는 대장금 촬영지와 멋진 해안가로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지로서 많은 인기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아픔이 묻어나 있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겨야한다. 가마오름 진지땅굴의 경우에는 내 키가 156cm인데, 그 보다 조금 큰 높이 밖에 되지 않는 땅굴이었다. 하지만 오름 전체적으로 미로와 같이 땅굴이 파져 있으며, 지금은 일부분만 개방이 되어 있지만, 1.2층으로 나뉘는 대규모 진지 땅굴이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재현된 모형으로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실제로 내가 이 땅굴을 팠으면 정말 무섭고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나, 가마오름 진지땅굴은 국가지정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이 진지땅굴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평화박물관이 최근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었다. 평화 박물관은 사립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개인이 좋은 취지하에서 박물관을 개관했지만 재정 적자와 운영에 따른 빚더미로 관장님께서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든 실정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국가에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일본 쪽에서 평화박물관을 매입하려는 요구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관장님도 어떻게든 평화박물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사실상 운영이 어렵게 되자 일본쪽에 매입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적은 글이 알려지면서 평화박물관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정부와 함께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나는 평화박물관에 대한 문제를 알았을 때, 굉장히 화가 났다. 진지 땅굴은 일제가 제주도를 전쟁기지화 시킴으로서 전쟁에 대비하려고 했던 역사적 증거인데, 일본 쪽에서 매입을 하려고 했다는 것과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않았던 점과, 이러한 문제가 전국적으로 이슈가 될 때까지 제주 도민들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심지어는 그러한 땅굴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무심함에 화가 났다. 또 한편으로는 나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뒤늦게 깨달은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이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이 진지땅굴 또한 일제 말기에 조선인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분들의 억울하고 비통한 마음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지금 나도 화가 나는데 그 당시 분들은 자신들이 왜 그 땅굴을 파야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밤새 일하는 것이 정말 분통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노인까지 나이 불문하고 데려다 일을 시켰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그곳에 끌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손발이 불구가 되기도 하였고, 노인이 되었는데도 쉬지도 못하고 끌려가 목숨을 그곳에서 마치기도 하였다. 일본인들에게 식민지인 우리 조선인들은 사람이 아닌 그저 기계이고 노예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광복이 된 후에도 땅굴에서 노동한 후유증 때문에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있다고 한다. 평생 그런 상처를 보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이다.